“그 기억은 심장에 박혔습니다.”

1940년 14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8년이나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전쟁터로 끌려다니며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고 김복동 할머니의 말이다. 그녀는 1992년 3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군‘위안부’로서 입었던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그 후, 그녀는 역사적 진실을 중언하는 행보에 적극 나서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적 관심을 이끌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우리가 했다’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진정성 있는 일본정부의 사과다라고. 그러나 한국정부는 2015년 12월, 피해자들의 의견 반영 없이 한일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에 합의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했다.

그녀는 끝내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올해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보다 앞서 진실을 밝힌 사람은 김학순 할머니다. 그녀는 피해자들 중 최초로 자신의 실명을 밝히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1991년 8월 14일이었다. 1990년 6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후였다. 그녀는 그때까지 누구도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최초의 증언자로 나섰다. 그러자 국내는 말할 것 없고 필리핀, 중국, 대만, 네델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것을 기념하여 8월 14일은 ‘세계위안부기림일’이 되었고, 올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7번째 연대집회가 열렸다.

당시 그녀가 한 일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일본군‘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가족조차 외면하고 냉대로 일관하는 현실이었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개인의 불행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은 없었다. 그녀의 최초 증언 후 ‘심장에 박힌 아픔’을 입 밖에 꺼내놓은 피해자는 240명이었다. 그로부터 28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스무 명뿐이다. 대부분 가벼운 산책조차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기억도 많이 소실되어 간다. 세월은 머잖아 그들마저 데리고 갈 것이다.

일본은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14년의 고노담화와 아사히신문의 ‘위안부’보도를 강력 비판하면서 전범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반성과 사죄를 거부했다. 머잖아 남은 증인들마저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그들의 죄에 대해 증언할 사람이 없는 만큼 역사를 수정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아베는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거듭날 무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언제든지 출동 가능한 국가의 전력을 갖추는 것이고, 그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첫 사례가 우리를 향한 무역보복이다. 그들은 피해자가 원하는 진정한 사과는 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 삼아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다. 우리를 깔보고 장차 우리의 목을 틀어쥐고 싶은 야욕을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대비한 지혜를 모으기보다 대문을 열어놓은 채 집안싸움 중이다. 각계각층에서 남북이 갈린 것만큼이나 여론이 갈려 있다. 반일 운동이 전개되는 이 판국에 아베에게 사죄한다는가 하면, 딸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같은 피해를 당해도 일본을 용서한다는 사람도 있다. 의외로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 표출 방식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내 식구 밉다고 이웃사람 편들며 내 식구에게 삿대질하는 것은 집안 망하는 짓이 아닌가.

지금은 어느 때보다 마음을 모아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 비행기가 우리 상공을 날고, 일본이 우리 땅에서 자위권을 주장하며 비행기를 띄우는 위중한 시점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남녀가, 노사가, 세대가, 각자의 목소리로 싸우기만 해서는 힘없는 나라에서 끌려가야 했던 소녀들과 소년들이 흘린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다시 흘리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정치권은 국민의 대표답게 비열한 싸움질을 그만두고 위기를 타개할 묘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늘 지난 역사 속에서 길을 찾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부디 마음을 모아 밤도둑처럼 몰려오는 불행을 막을 일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