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하면 가장 먼저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당연히 제주도가 떠오르겠지요. 하지만 부산에도 신라 때부터 왕실이나 국가가 직접 관리해 뛰어난 명마를 사육한 국마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림자조차 따르지 못할 만큼 빠른 명마를 기른 곳이라 하여 지명조차 절영도(絶影島)인 지금의 영도가 바로 그곳입니다.

말이 얼마나 빠르면 그림자가 따르지 못할까요? ‘삼국사기 김유신전’에는 성덕왕이 삼국통일의 업적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높이 여겨 그의 손자인 대아찬 김윤중에게 절영도에서 생산한 말 한 필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1497년(연산 3년) 좌의정을 역임했던 이극균은 ‘절영도가 말을 먹일 만한 곳’이라 했으며, 정호라는 관리도 ‘절영도는 바깥 면이 지극히 험하지만 그 안의 토지가 비옥하다’며 명마를 기를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췄다고 했습니다. 1676년(숙종 2년) 9월, 허목은 ‘영남관찰사를 보내는 글(送嶺南觀察使序)’에서 ‘절영도에서 좋은 말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또 영도 동삼동의 옛 이름은 구룡(駒龍)인데 여기에서 망아지를 키우면 용과 같은 훌륭한 말이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록과 지명을 근거로 유추해보면 절영도 국마장에서 기른 말은 다른 어떤 지역에서 사육한 말보다 뛰어난 명마가 틀림없었을 겁니다.

영도의 주산은 봉래산(395m)인데 부산사람들은 예부터 진시황 때의 방사 서불이 지나간 곳이란 전설과 결부해서 이 산을 신선의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영도의 동명(洞名) 중에 신선동, 봉래동, 청학동 등이 있는데 봉래산 지명 전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봉래산 정상에 오르면 절영도의 절경과 역사적 흔적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다대포와 해운대 그리고 승학산과 금정산까지 바다와 산들이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적 깃발을 크게 꺾고 남해의 해상권을 되찾았던 조선 수군의 함성과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도 보입니다. ‘금순아 굳세어라’고 노래했던 영도 태생 현인 선생의 노래비가 보이고, 47년 만에 다시 들리는 영도다리와 용두산을 오르는 40계단, 한 많은 피란살이로 눈물 철철 넘치던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보입니다.

영도에서 뭍으로 나갈 때, 이러한 자연과 지명 유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며 절영마를 타고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또 그 말을 타고 통일된 한반도의 서울과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넘고 저 만주벌판으로 내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지난해 말(2018년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이 있었습니다. 남북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다는 의미를 넘어 휴전선에 막혀 고립된 대한민국이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하도록 물꼬를 트는 행사였습니다. 북한을 거쳐 파리와 런던까지 유라시아를 잇는 거대한 철의 실크로드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언젠가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과 끝에 부산이 있고 절영마의 생산지였던 영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83년 전인 1936년 8월 9일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여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린 날입니다.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둔 시점 부산에서 서울까지 경부선을 타고 또 서울에서 만주행 열차를 갈아타고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베를린에 도착한 뒤 드디어 8월 9일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이 중요한 것은 그 금메달이 일제강점 아래에서 고통받던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그랬듯 현재의 우리 젊은이들도 부산발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세계로 진출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베 정권의 경제침략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열차의 출발역은 당연히 부산역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부산은 명실공히 육해공에서 물류의 시발점이 되는데, 그때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륙 횡단 열차 이름을 쾌속 질주의 상징인 ‘절영마’로 하면 얼마나 멋질까요? ‘절영마’란 이름을 단 부산발 열차가 한반도를 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까지 확, 떨쳐버리고 유라시아 대륙을 힘차게 달리는 그날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호쾌하고 시원해집니다.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