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선인 아폴로 11호는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닐 암스트롱의 말과 함께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의 성공 뒤에 아폴로 8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폴로 8호는 지구 바깥의 천체를 탐사한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었으며 나중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지점을 자세히 정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196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처음으로 달 궤도 탐사에 성공한 아폴로 8호는 생중계로 지구에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했다. 달 궤도를 10차례나 선회 비행하며 찍은 우주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구 모습, ‘디 어스라이즈 (The Earthrise)’. 소위 ‘지구돋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구가 아닌 곳에서 지구를 바라본 행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에서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게 만든 관점의 전환인 것이다.
관점의 전환에 관해서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 일례를 하나 찾아볼 수 있다.
옛 용어 중 ‘미행’이라는 말이 있다. ‘미복잠행’의 준말로 조선 시대 임금이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다니던 일을 일컫는다. 임금은 미복잠행을 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며 이를 국정운영에 참고하는 일이 많았고, 또한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좁은 궁궐 안 임금의 근시안적 시각이 아닌, 백성의 눈으로 나라를 보고 민의를 읽으려 했던 미복잠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시각 전환의 중요성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다.
2019년 부산은행의 경영방침은 기존 낡은 은행업의 틀을 깨는 ‘리디자인 뱅킹(Redesign Banking), 은행업의 재설계’이다. 틀을 깬다는 것은 인식론적 전환에서 출발한다. 은행의 시각으로 고객과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지역사회의 눈으로 은행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고객과 지역사회의 시각으로 은행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다. 필자가 취임 후 ‘고객중심경영’ 철학을 임직원들과 공유하며, 새로운 100년 은행을 향한 미래지향적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도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찾기 위한 맥락에서다.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부산은행은 최근 4년간 당기순이익의 평균 11%가 넘는 금액을 지역사회에 사회공헌사업으로 환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자 ‘지난 사업들이 연속성이 결여된 일회성의 나열식 공헌활동은 아니었을까’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은행과 지역사회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함께 추구하는 것,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을 넘어 기업과 지역사회가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활동(CSV:Creating Shared Value)이 필요하며, 이런 관점에서 사업들을 앞으로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부산은행이 추진 중인 환경문제 개선에 기여하기 위한 ‘그린뱅크’, 부족한 지역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아트뱅크’ 사업 진행도 모두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관점의 전환을 위한 노력은 최근 디지털화가 심화되는 금융업에서도 요구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활용 등의 다양한 기술적인 진화가 금융의 변화를 촉진하고 고객에게 더 편리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부산은행이 급변하는 디지털금융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도 단순한 위기의 극복이 아닌 새로운 기회의 발견을 위한 접근법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아폴로 8호에서 바라본 지구 모습 그리고 조선 시대 군주의 미복잠행에서 얻은 ‘관점의 전환’이라는 교훈을 계기로 지역과 고객의 시각으로 은행을 바라보고자 한다. 최근 침체를 겪는 지역 경제를 볼 때면 지역민과 함께 성장해온 지역은행의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이윤 추구가 기업의 존재 이유였지만 관점을 전환해 지역사회와 관련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혁신적인 노력도 지역은행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금융의 역할 수행과 사회공헌사업에 이르기까지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과 함께 걸어가는 부산은행의 소명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BNK부산은행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