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상상했던 많은 일이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이렇게 발전하여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 줄은 몰랐다. 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게놈(유전체)연구와 맞춤치료,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에 이르기까지 지난날 상상만 했던 다양한 학문과 기술이 의학에 접목되고 있다.

기존 의료는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수집되는 자료가 전부였다면 이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보건 데이터는 물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물리적, 정서적 상태까지도 포함한 빅테이터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기기의 확산과 AI분석 기술이 만나 질병진단의 정확성과 속도가 향상되면서 조기치료 및 완치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각종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원격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과 결합된 이경(耳鏡)을 통해 부모는 아이의 귀를 들여다보고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심전도를 촬영해 의사에게 보내면 위험한 부정맥을 검사하고 대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격진료가, 대면(對面)진료의 여러 가지 이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긴 하다.

1996년 미국과 영국 등 선진 6개국 과학자를 중심으로 출범한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서 의학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인간유전체의 비밀이 밝혀졌다. 약 30억 쌍의 DNA로 구성된 인간유전체 안에 약 2만 개의 유전자가 있다. 이를 잘 분석하면 개인의 특성에 맞는 정밀맞춤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해 유방 절제술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의 유전자 정보가 쉽게 노출되면 여러 가지 사회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때맞춰 미국에서는 이미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 정보 때문에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발효 중이라 한다.

기존 AI에 새로운 알고리즘을 많이 주입하다보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되어,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이상의 뛰어난 의료용 인공지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AI의사로 부름 직하다. 2015년 1월 출간된 ‘유엔 미래보고서 2045’는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게 되는 시기가 2045년쯤이라고 추산했다. 향후 3D프린터를 이용해 기능이 떨어진 인간장기를 바꿀 수 있다고, 또 엄청나게 진화한 인공지능 로봇이 수술이나 간호 등 상당 부분의 의료행위를 대행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편, 2014년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은 이미 국내에도 7개 대학병원에서 운용되고 있거나 운용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듯하다. 금년 4월 미국 ‘스펙트럼’지(誌)는 ‘IBM이 2014년 요란을 떨며 공개한 인공지능 왓슨이 헬스케어 시스템 현실과 맞지 않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3년 전 한국에서도 모 대학병원이 IBM사의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임상에 운용하기 시작하여 그간 656회 대장암 환자를 평가한 결과, 치료권고에서 겨우 49%의 일치율을 보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고작 3년 만의 성과이다. 미국 영상의학계의 선구자인 엘리엇 시걸 교수는 이러한 AI 장착 도구들이 앞으로 10년 안에는 의사들이 거부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AI의사의 역할이 의료진의 파트너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의 능력을 뛰어 넘어 인간이 오히려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이를 악용하면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AI의 역기능을 사전에 차단하는 글로벌 컨센서스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사모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인 슈워츠먼 회장이 “AI 기술은 향후 10~15년 안에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폭발적인 힘을 지녔다. 우리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기술이 도입될 수 있도록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영국 옥스퍼드대에 무려 2000억 원에 가까운 기부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 기부금은 대학 내에 인공지능(AI) 윤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니 참 바람직한 일이다.

아무튼 AI의사의 역할은 미래의학의 큰 빛이고 또 그림자이다. 어쩌면 의사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어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의술(醫術)은 단순한 기술(技術)이 아니라 고도의 인술(仁術)이란 것.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으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의 숭고한 자세는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무기체에 불과한 AI의사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인간의사의 큰 덕목이다.

수필가·의사·온천사랑의요양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