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산업혁명은 과거의 놀라운 변화·발전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결과로서 ‘혁명’이라 불리지만, 초연결·초지능을 특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에 비해 모든 분야에 더욱 깊고 빠르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현재진행형의 차세대 혁명이다.
2016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승부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알파고의 완승으로 끝난다. 2017년 말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 자산(crypto asset) 투자열풍이 일어난다. 하지만, 돈세탁 수단, 투자자 보호 문제 등이 노출되면서 17세기 네덜란드 튤립버블에 비유될 정도로 가격이 폭락하여 투자자들을 실망케 한다. 신기술이 갖는 양면성, 즉 혁신성과 함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금융규제 정책이 현실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융위원회 주도로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통해 혁신 기술을 수용하고자 하는 정책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샌드박스(sandbox)’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모래상자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만들며 놀 수 있는 것처럼, 혁신적 신규 사업을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시도해보고 그 결과를 검증해볼 수 있는 정책공간을 의미한다. 규제에 묶여 추진할 수 없었던 금융 서비스를 개척함으로써 서비스 다양성을 높이고 경쟁을 통한 서비스 품질의 향상을 기대해 본다.
이와 같은 혁신 금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야 한다.
먼저, 금융의 안정화 측면이다. 탈중개화와 분산장부를 특징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분명 파괴적이다. 이에 따라 어떤 이는 앞으로 중개를 위한 금융기관은 필요 없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금융시스템은 오랜 운영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이상적으로 작동되는 경우만을 가정해서 섣불리 새로운 비즈니스를 설계하기엔 그동안 확고한 체계를 구축해 온 금융시스템이 한 나라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다. 현행 금융시스템의 기능 또는 보안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단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컨설팅 업체인 가트너사가 2017년 발표한 신기술의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보고서에 따르면, 신기술은 태동기~거품기~거품제거기~재조명기~안정생산기의 5단계를 거쳐 정착된다고 한다. 당시 블록체인 기술은 정착에 5~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며 거품기의 정점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처리 속도 등의 한계로 공인인증 간소화, 보험금 청구, 해외송금 등 제한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다음은 역시 투자자 보호다. 코인 공개(ICO), 증권형 토큰 공개(STO) 등을 통해 암호화 자산은 일반화된 금융자산으로서 제도권 편입을 지향하고 있으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투자수단을 원하는 투자자와 그 수단을 제공하려는 새로운 기술업체들의 이해가 맞물려 발전 가능성도 크다. 하지, 비트코인 투자열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거래소의 해킹 또는 정보 분실, ‘벌집계좌’로 불리는 고객자산과 고유자산의 혼합 등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는 신뢰 상실로 이어져 암호화 자산이 투자자산으로 편입되는 것을 더디게 하고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 보호를 고려하여 거래소의 책임 명확화, 고객자산의 분리보관 등 자본시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반적 규제·감독체계의 도입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증권시장에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예탁결제원은 그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축적하고 내재화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최근에는 전자투표와 채권장외결제 서비스에 대하여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위한 개념 검증을 한 바 있다.
한편, 부산시는 지난 4월 지역특구법이 발효된 이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오는 7월에는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학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인터넷에 버금가는 변화를 우리 사회에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예탁결제원을 비롯한 부산 국제금융센터 입주 금융기관과 금융 관광 물류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진 부산시가 상호 협업한다면, 부산시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우리나라의 금융혁신과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블록체인의 메카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저 막연한 희망사항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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