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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원앙도 아는 것 /정인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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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06 19:03:38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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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살아남고 싶었지만 결국 죽게 되는 두 가족을 보여준다. 그들은 상대방의 비밀을 안 순간 적의를 느끼며 각자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타협의 여지가 없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거짓이 폭로될 경우 겪게 될 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대가는 비참한 죽음들과 영원한 자폐다. 영화를 읽는 코드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기생충’을 보며 약자들의 투쟁과 그 방식인 폭력의 무게를 보았다.

폭력은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감정표출의 방식이다. 계층을 불문하고 비위가 틀어지면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한다. 불특정의 개인들, 회사 직원, 가족, 어린 아이까지 운 나쁘면 죄 없이 두들겨 맞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언어폭력도 심각하다. 국민의 민복이라면서 기득권은 다 누리는 국회의원들마저 수치심을 잃고 폭력적 언사를 마구 내뱉으니 사회의 분노지수도 따라 증가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다양한 폭력 형태의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거칠어져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능력이 자꾸 메말라간다. 타인의 불행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마구 조롱한다. 그 와중에도 치매에 걸려 맨발로 다니는 할머니께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 그런 미담이 있어 그나마 거친 시대에 위로를 받는다. 약자를 돕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이란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얼마 전 함양군 상림에 갔다가 목격한 어린 원앙들의 사투기를 봐도 그렇다.

2주 전, 상림에는 비가 내렸다. 그 빗속을 어미원앙이 갓 부화한 새끼들을 거느리고 상림 옆 연꽃단지의 수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너무나 앙증맞고 기특해서 절로 걸음이 멈추어졌다. 빗속에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수로 끝 지점의 물살이 급해서 솜털뭉치 같은 새끼원앙들이 행여 거친 물살에 휩쓸릴까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어미가 턱이 낮은 데를 찾아 뛰어올랐다. 그런데 보기보다 물살이 빨랐던가 새끼들이 잠깐사이에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동행이 잽싸게 두 손을 내밀어 새끼들을 움켜잡았지만 겨우 5마리였다. 두 손으로 잡지 못한 나머지는 그 새 다리 아래 하수구로 사라졌다. 부리나케 하수구와 연결된 개울 쪽으로 뛰어갔다.

물이 불어난 개울에 아기 주먹만 한 새끼원앙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건져주고 싶었지만 그 와중에도 녀석들은 사람을 경계했다. 잠시 지켜보자 놀랍게도 9마리의 어린 원앙이 삼각편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중 몸집이 큰 녀석이 앞장섰다. 녀석들이 힘겹게 전진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약한 녀석들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두가 방향을 돌려 뒤처진 녀석들 앞으로 가 다시 앞장섰다. 같은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뒤쳐지는 녀석들을 결코 내 몰라라 하지 않고 함께 움직였다.

얼마 후 어미원앙이 새끼들을 찾아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왔다. 앞서 목숨을 건진 5마리도 뒤따라왔다. 드디어 새끼들을 발견한 어미원앙이 망설임 없이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1미터가 넘는 높이였다. 5마리의 새끼도 따라 뛰어내렸다. 14마리의 새끼원앙이 마침내 다시 모였다. 이젠 어미가 앞장섰다. 어미는 물살이 약한 모래톱을 찾아내어 새끼들을 잠시 쉬게 했다. 그리고는 새끼들을 이끌고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지친 새끼들은 쉬 따라붙지 못했다. 어미가 또 물살이 약한 모래톱을 찾아내어 쉬었다. 그리고는 또 힘겨운 전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이끌고, 기다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눈물겨운 사투였다.

얼마 후, 마침내 어미는 뭍으로 오르는 길목을 찾아냈다. 어미가 먼저 땅으로 뛰어올랐다. 새끼들도 뒤따라 올랐다. 몇 번이나 곤두박질치는 녀석도 있었지만 드디어 마지막 녀석까지 무사히 상륙했다. 그들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전진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우 솜털뭉치만 한 어린것들도, 한갓 미물이라 생각한 원앙들도 생래적으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더불어 사는 길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경외감과 감동을 느끼며 돌아오는데, 갈수록 인간미를 잃고 삶의 기본과 멀어져 가는 우리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되살아났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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