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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노동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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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 뒷면에는 아동노동이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말도 잘 못하는 4~5살 아이가 기계에 기어들어가 윤활유를 바르거나 굴뚝을 청소하고 비좁은 갱도에서 탄을 캤다. 성인 10분의 1도 안 되는 저임금에 하루 12~18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 1819년 영국 의회에 9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이 상정됐지만 반대도 거셌다. 가난한 아이들이 일을 해 빵을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당시엔 현실을 반영한 의견으로 비쳤다. 산업화된 나라에서 대략 15세를 노동 하한 연령으로 보고 금지하게 된 때도 20세기 중반 들어서다.

일할 수 있는 연령의 상한선을 뜻하는 ‘노동 가동연한’도 빠르게 늘고 있다. 노동 가동연한은 사망하거나 노동력을 잃은 피해자의 손해배상 기준이 되며 정년과는 다르다. 대법원이 처음 가동연한을 제시한 때가 1969년으로 55세였다. 당시 평균수명은 60.3세에 불과했다. 20년간 유지되던 이 판단은 1989년 60세가 됐고 지난 2월엔 65세로 올랐다. 생활과 보건의료 수준 향상으로 수명이 늘고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게 이유다. 그제 부산지법이 대형 애완견 때문에 무릎 장애를 갖게 된 50대 남성의 가동연한을 65세까지로 본 것도 이 판례에 따른 것이다.

과거 법원 판결 등을 보면 비교적 늦게까지 일할 수 있는 직군으로 목사 승려 변호사 법무사 한의사가 꼽힌다. 무려 70세다. 소설가 의사 약사 건축사 등 화이트칼라도 65세로 높은 편이다. 농어업인도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몸을 써야 하는 운동선수는 프로야구 선수가 40세, 축구 선수는 35세로 낮다. 같은 가수라도 댄스가수는 40세, 트로트가수는 60세로 본다.

인간을 정의하는 개념 중에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라는 말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처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근대에 들어 노동을 벗어나야 할 굴레로 보든,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보든 일하는 행위가 인간의 본질이란 인식이 생기면서 나온 용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적정 퇴직연령을 65세로 보지만 실제 퇴직연령은 49세라는 조사가 있다. 반면 평균수명은 83세에 육박한다. 이들에겐 ‘일’이 ‘복지’인 것이다. 호모 라보란스에겐 노동이 생계수단일 뿐 아니라 존재증명이기도 한 만큼 짧은 정년과 길어진 수명 차이로 생긴 유례없이 긴 노동공백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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