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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이팝나무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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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가장 빛나는 색이다. 태양광선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해서, 인류가 흰색을 신성과 순결의 상징으로 여기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라 하겠다. 성경에서는 흰 옷을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나 천사, 하늘에 사는 이들의 의복으로 소개한다. 신을 섬기는 사람도 흰 옷을 입었다. 이슬람의 메카 순례자가 착용하는 ‘이람’이 그 하나다. 이람은 솔기 없는 흰 천 두 장으로 만든 옷이다.

하지만 흰색은 때론 슬픔을 자아낸다. 눈을 뒤집어쓴 듯 새하얀 이팝나무 꽃이 그렇다. 이팝나무 꽃은 지난가을 수확한 양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이맘때 핀다. 이팝(쌀밥)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배고픈 날, 나무를 뒤덮은 못 먹는 흰 쌀밥은 눈이 멀듯이 하얀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팝나무 꽃에는 애잔한 전설도 서려 있다. 며느리가 제사상에 올릴 쌀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밥알 몇 개를 입안에 넣었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제삿밥을 퍼먹었다며 며느리를 쫓아냈다. 며느리는 뒷산에서 목을 매 죽었고, 이듬해 며느리의 무덤가에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흰 슬픔’의 전설이다.

‘흰 슬픔’은 이팝나무 꽃과 비슷한 시기에 피는 찔레꽃에서도 배어난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이원수, 윤석중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동요시인으로 평가되는 윤복진(1907~1991)이 빚어낸 동심의 기억은 쓰리다.

‘흰 슬픔’은 고달펐던 날의 전설인가 했더니, 지금도 여전한 현실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공동조사해 최근 발표한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가 그 증좌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올해 식량 수요는 576만t인데 생산량이 417t에 그쳐 159만t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북한 인구의 약 40%에 달하는 101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릴 전망이다. 보고서는 “식량 부족은 춘궁기에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인도적 개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에 걸려 인도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800만 달러를 북한 모자보건사업에 공여하기로 한 결정도 묶여 있다. 비핵화 견인을 위한 제재는 필요하나 인도적 지원까지 연관시켜선 안 된다. 북한의 인권 결핍을 비판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막는 건 위선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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