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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리디노미네이션, 지금 필요한가 /정철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8 19:24:2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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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3월 말 국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물론 이후 “국회의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질문에 원론적으로 답했던 것”이라며 “전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고액 자산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집 금고에 넣어둔 현금으로 금과 달러를 사거나 강남 급매 아파트를 사고, 백화점 상품권으로 바꾸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가치는 그대로 두고 호칭과 단위만을 바꾸는 화폐개혁을 말한다.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 화폐나 채권 주식 등의 액면금액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 하면 ‘디노미네이션의 변경’이다. 영어적 표현으로 ‘리-디노미네이션’ 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거다. 이건 1000의 1을 한 것이고, 100분의 1로 하면 1000원은 10환이 될 것이다.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적극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기존 1000원을 1환으로 바꿔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 가치와 1 대 1 비슷한 비율로 맞추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워낙 ‘언론과의 전쟁’이 극심했고, 정치권의 전투적 상황이 극한을 달렸던 터라 흐지부지 묻혔다. MB정부도 하고 싶어했지만 여론 반대에 ‘5만 원 고액권’이란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하자는 쪽의 첫째 논거는 국민의 거래 편의성이다. 미국의 1달러를 우린 1153원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이 우수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공공요금 납부 때도, 은행 송금 때도 불편하다. 둘째는 원화의 대외 신인도, 나아가 국격 신장에서 찾을 수 있다. OECD 국가 중 미국 1달러대 환율이 네 자리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원화와 한국이 저평가받는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역시 지하자금 양성화이다. 화폐를 한 번 바꿔야 하니까 지하자금은 한 번 양지로 나와야 한다. 한국의 지하자금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20% 정도라 하니 300조 원 정도는 시장에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반대는 엄청나다. 먼저 원화의 대외적 신인도를 끌어올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콧방귀를 뀐다. 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해당국 경제펀더멘털에 좌우되는 것이지 환율 자릿수 때문에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새 화폐를 찍어내는 주조 비용 외에도 금융권과 기업은 현금인출기(ATM)를 비롯한 회계 프로그램을 교체해야 한다. 새 화폐시스템에 적응하면서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는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역시 인플레이션에서 찾을 수 있다. ‘반올림과 올림’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0분의 1 리디노미네이션을 한다고 하면 920원은 0.92환이 아니라 1환이 되고, 9500원 하는 국밥 가격은 바로 10환으로 매겨진다. 9억7000만 원의 아파트 가격은 이론상 97만 환이 돼야 하지만 현실에선 100만환으로 책정되기 쉽다. 자연스러운 인플레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명목적으로 경제 지표들을 좋게 보이려고 편법을 쓴다”는 식이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국민은 무관심 또는 반대, 여당은 긍정적, 한국은행은 ‘준비됐다’ 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된다면 단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부동산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 산업구조를 보면 증시보다 부동산에 유동성이 다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빈부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처참한 경제성장률에 어떻게든 경기부양을 하고 싶은 맘은 이해한다. 그래도 리디노미네이션은 너무 큰 모험이다. 차라리 미국 눈치를 보면서 금리인하 정도로 따라가는 게 더 좋다. 경기부양의 목적은 명목 지표개선이 아니라 실질적인 국민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데 있다는 걸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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