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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군국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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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타계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의 대표작 ‘반딧불의 묘’는 2014년 국내 개봉 당시 복잡 미묘한 메시지를 던졌다. 영화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14살 소년 세이타와 네 살배기 여동생 세츠코가 전쟁에 부모를 여의고 맨몸으로 피란 다니다 굶어 죽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1988년 일본 개봉 때 주요 외신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버금가는 반전영화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반응은 좀 달랐다. 전쟁의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 한다는 것이다. 국내 개봉이 영화가 제작된 지 26년이나 지나서야 이뤄진 데는 이런 정서가 영향을 미쳤다. 원작자나 감독의 진의는 딴 데 있었을지 몰라도 “전쟁은 국가가 일으킨 것이고 일본 국민도 결국은 피해자”라는 영화 속 뉘앙스를 피해 당사자인 이웃나라들이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일본의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로 이어지는 세 연호 시대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엔 악몽과도 같다. 메이지 시대는 일본엔 근대화의 기점이지만 주변국엔 침략 본색이 노골화된 시기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해 식민지로 삼았다. 다이쇼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군사력을 키운 일본의 군국화가 본격화된 시기였다. 아키히토 현 일왕의 아버지 히로히토 재위기인 쇼와 시대 일본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난징학살에 이어, 하와이 진주만 습격으로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다. 강제 징용되고, 일본군 위안부로 전쟁터에 끌려가야 했던 조선의 비참함과 중국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 레이와(令和)를 만든 나카니시 스스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명예교수가 최근 아베 총리 정권하 일본의 군국주의를 경계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이 한반도 등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참혹한 역사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보통국가화를 내세우면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아베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아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의 옛 이름은 조슈번으로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지사들의 산실이자 정한론(征韓論)의 태동지이다. 나라를 외세에서 지키겠다고 일어선 지사들이 대외팽창의 군국주의로 폭주하면서 주변국을 불행에 빠트리고 스스로도 패망의 길을 간 역사를 아베도 알 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올해도 공물을 봉납한 아베를 보면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떠올리는 게 우리 국민의 단순한 피해의식일 순 없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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