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하고도 한 옛날 닭들의 알낳기 경쟁이 극에 달해 알을 낳지 못하면 바로 폐사되는 닭장왕국에서 닭울음 솜씨 뽑내기 대회가 있었다. 일명 계명성 경연대회인데, 그즈음에는 닭이 아닌 오리 거위 갈매기 비둘기 심지어 참새와 뱁새까지도 닭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게 유행이어서 중앙에서 실시하는 본선대회는 차치하고서라도 각 지방에서도 갖가지 닭울음 대회가 열려 실로 닭울음소리에 깨서 닭울음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시절이었다.

이제는 신화처럼 남아 있을 뿐인 닭울음 대회를 이 자리에서 회고하는 까닭은 그 닭울음 대회가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닭울음 대회는 특이하게도 계분냄새 가득한 계족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고, 계족주의의 유행은 당시 닭장의 실상을 은폐하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닭울음 대회는 갖가지 형태로, 여러 가지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열렸다. 그 모든 소재의 원천은 100년 전 닭장을 침탈한 살쾡이와 연관된 것이었다. 당시의 신문기사와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살쾡이의 사냥에 대항하다가 산화해간 열계정신 계승 닭울음 대회, 닭장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웃 닭장으로 망명해서 그곳에서 수립한 임시닭장정부의 정신 계승 닭울음 대회, 아직 솜털이 채 가시기도 전의 암중병아리가 촉발시킨 애국정신 계승 닭울음 대회, 살쾡이의 우두머리를 닭벼슬 새총으로 저격한 의계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함양하는 닭울음 대회 등 무수히 많은 대회가 열렸다. 그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열려 계족의 피를 끓게 하는 대회가 있었으니, 당시 살쾡이 간의 전쟁터에 잡혀가 깃털이 뽑히고 날갯죽지가 꺾여 날마다 알을 낳아 살쾡이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했던 위안부노계에 대한 사죄와 보상, 그 영계상에 관한 닭울음 대회였다.

어찌됐든 그 모든 대회는 100여 년 전 안팎에 일어난 살쾡이의 만행에 대한 분노와 사죄, 계사 바로세우기, 적계 청산과 연관된 것으로 그 밑바탕에는 닭장주의와 계족주의가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물론 살쾡이들은 닭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계족주의의 부흥이 그리 달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패전한 뒤 이빨과 발톱이 앗긴 살쾡이들은 이미 집고양이 꼴로 전락해 있었고, 일부 사냥 본능을 잃지 않은 늙은 살쾡이들이 중심이 돼 군묘주의의 부활을 선동하기는 했지만 주변의 시베리아 범국, 차이나 곰국, 아메리카 늑대국의 위세에 눌려 발호는커녕 뻗대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대회는 모든 예술 장르를 망라해 벌어졌다. 영화로, 연극으로, 퍼포먼스로, 춤으로, 노래로 재탕, 삼계탕, 사탕, 오골계탕 연일 이어졌던 것이다. 다만 그러는 사이 닭장 안에서는 경쟁적 알 낳기 교육이 불러온 영계의 자살 및 왕따 폭행사건으로 죽은 중병아리와 묻지마 폭행을 당한 암탉의 사연은 묻히고 닭장을 24시간 백열등으로 밝힌 채 알 낳기를 강요하는 닭장주인의 횡포도 묻히고, 몸도 뒤척일 수 없는 지옥 같은 사육환경의 실태도 묻히고, 호르몬제와 항생제로 버티는 산란계의 약물남용도 묻혔다. 세상의 적과 악은 100년 전 살쾡이와 살쾡이와 내통한 적계세력밖에는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실 따지고 들면 당시의 백계들은 살쾡이 침탈 이전 계씨왕조 500년의 수탈과 착취에 대해 먼저 들고 일어났으며, 그것이 닭이 됐든 살쾡이가 됐든 생존을 가로막는 수탈에 맞서 싸웠던 것이지 계족이 소중해서 싸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백계들이 들고 일어난 건 100년 전 계씨 왕조의 횡포와 만행 때문이 아니라 당대의 부패와 문란, 침략과 수탈 때문이다.

이 닭울음 대회 뒤의 역사는 아무리 사료를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는 닭장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정립하는 일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당대 닭장현실의 모순과 착취와 수탈 구조를 그대로 둔 역사 바로세우기는 공염불, 아니 공계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살쾡이들이 사죄했다고 치자. 친살쾡이를 색출해 멸했다고 치자. 그 이후 닭장은 착취와 수탈 없는 평화와 번영과 공생의 삶터가 됐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작가·헤세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