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통보였다.

그림 서상균

출석 요구는 수사가 개시되었다는 의미다. 수사를 하는 곳이 수사기관이다. 수사기관은 검찰, 경찰뿐만 아니라 국세청, 관세청도 포함한다. 대표적인 수사기관은 경찰이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를 받은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당황하지 말고 휴대전화 녹음버튼을 누르거나 메모지를 준비한다. 담당 경찰관의 성명과 소속, 조사받을 내용 등을 확인한다.

중요한 것은 조사받는 자신이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여부다. 참고인이라면 해당 사건의 제3자이므로 반드시 출석할 필요가 없다. 전화상으로 경찰관과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수 있다.

자신이 피의자라면 출석해야 한다. 경찰관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날짜나 시간에 맞출 필요는 없다. 협의하여 출석 일시를 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만일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관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러 올 것이다. 따라서 출석 요구를 받고 아무런 이유 없이 출석에 불응하는 것은 그다지 실익이 없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까? 변호사에게 법률적인 조언이나 상담을 받는 게 좋다. 그렇다면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할까? 만일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면 변호인 선임을 권유한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의 피의자를 조력하면 변호인이 된다. 민사사건의 당사자를 대리하면 소송대리인이 된다. 변호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형사법정과 민사법정을 오가며 변호인과 소송대리인으로 모습을 바꾼다. 변호인을 선임하였다면 가급적 변호인과 함께 경찰서에 출석하여 조사받는 게 좋다.

경찰서에 출석하였다면 조사가 시작된다. 경찰관은 먼저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알려준다. 진술거부권은 묵비권이라고도 한다. 이는 일체의 진술 또는 개개의 진술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 개개의 진술을 거부하여도 무방하다. 변호인이 피의자와 함께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면 변호인 조력권을 행사한 것이다.

피의자의 진술을 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다. 실무상 사전에 피의자의 동의를 받는다. 영상녹화를 할 때는 조사의 개시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녹화해야 하고, 일부분만을 선별하는 경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영상녹화물은 독립적인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으므로, 경찰관은 피의자신문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더라도 별도로 조서를 작성한다.

경찰관의 질문이 시작된다. 이를 신문이라고 한다. 만일 자신이 고소 사건의 피의자라면 경찰관의 질문을 고소인의 주장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경찰관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하게 답변해야 한다. 질문 내용이 너무 길거나 애매모호하여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성급하게 아무렇게나 대답하지 말고 경찰관에게 질문의 정확한 취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조사받는 시간은 사건의 경중이나 내용에 따라 다르다. 아침부터 밤까지 조사받는 경우도 있다. 조사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심신이 너무 지쳐서 자신의 진술이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조사를 중단하고 귀가하는 것이 좋다. 실무상 밤샘조사도 가능하지만 피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조사가 끝나면 경찰관은 조서를 출력하여 건네준다. 피의자는 조서를 열람하지만 질문과 답변이 과연 어떤 법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때 변호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변호인은 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잘못 기재된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 조사의 종점은 바로 조서에 있다. 이 조서가 나중에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답변이 제대로 기재되어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 혐의를 부인했는데도 인정하는 것처럼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조서를 모두 읽었다면 조서에 자신의 성명을 기재하고 도장이나 지문을 날인한다.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아마 당신에겐 너무나 긴 하루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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