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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기절을 부르는 비너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12 19:32:0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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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던 위대한 예술작품을 실제로 본다면 어떨까. 기쁨과 행복감은 당연할 테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평균적인 감동을 넘어 호흡곤란이나 현기증, 환각을 경험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실신까지 한다. 이걸 ‘스탕달 신드롬’이라 부른다. 이 특이한 병명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미술작품을 본 후 순간적으로 황홀경에 빠져 호흡곤란을 겪은 데서 유래했다. 어떻게 미술작품을 보고 실신까지 하느냐 싶겠지만 찬란한 르네상스시대 걸작이 즐비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5년경).
지난해 12월에도 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던 한 남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약 530년 전에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본 직후였다. 당대 최고의 예술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제작된 이 그림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림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다. 바다 거품에서 막 태어난 비너스는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안에 다다르고 있다.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꽃과 풍요의 여신인 클로리스와 뒤엉킨 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힘껏 밀어 주고 있다. 이들 주변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분홍 장미꽃들이 쏟아져 내린다. 오른쪽에는 봄의 여신이 꽃무늬 망토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한다. 그녀의 하얀 드레스엔 행복을 상징하는 수레국화 문양이 장식돼 있다. 긴 금발을 흩날리며 양손으로 주요 부위를 살짝 가린 비너스는 우아한 곡선의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고대 비너스 조각상에서 따온 이 포즈는 순결하고 정숙한 여신을 뜻한다.

보티첼리는 육체적으로 결합된 제피로스 커플과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닌 봄의 여신 사이에 비너스를 배치시켜,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이라는 상반된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우아하면서도 정결하고 신비로운 비너스의 모습은 훗날 시대를 초월한 미의 아이콘이 되었다. 가로 약 3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그림 앞에 실제로 서면 8등신 누드의 여신이 마치 관객을 향해 화면 밖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 그림 앞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는 이가 많다. 2016년에도 한 관객이 이 그림을 보다가 발작을 일으키며 기절했다.
신기한 건 스탕달 신드롬이 피렌체에서만 발병한다는 거다. 그래서 이 도시의 영문명을 따서 ‘플로렌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1992년 발표된 한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7~1986년 피렌체에서 예술작품을 본 후 일시적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106명이나 된다. 환각과 기절을 유발하는 피렌체의 걸작들! 언젠가는 작품들 앞에 ‘감수성 예민한 자 관람 불가’라는 경고 문구가 붙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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