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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대통령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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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말 부산 금정경찰서가 한 통의 전화로 들썩이는 소동이 있었다. “저 노무현입니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당연히 장난이라 생각해 한마디 쏘아붙이고 수화기를 놓았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왔다. “저 대통령 노무현입니다.” 노 대통령이 당시 금정서 서장이던 이모 총경을 찾는 전화였던 것이다. 이 총경은 친형이 노무현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장 정책특보를 맡는 등 자타공인 노 정권의 대표적 경찰 인맥이었다. 두 사람의 통화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과연 실세는 실세”라는 뒷말을 낳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전화를 못 받아 장관직을 놓친 이도 있다. YS가 장관으로 낙점한 인물이 있어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부재중으로 통화가 안 됐다. YS는 그 자리에서 다른 이에게 전화를 돌렸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장본인은 땅을 쳐야 했다. 개각철만 되면 입각 희망자들이 집 전화기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이야기다.

조선 시대에는 신하가 임금과 직접 소통하려면 알현이 최선이었다. 이때 승지와 사관이 반드시 배석했다. 비밀접촉을 통한 음모나 중상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성종 이후 조선왕조실록엔 사관 없는 독대가 딱 세 번 등장한다. 중종 때 김안로, 효종 때 송시열, 숙종 때 이이명이 그 주인공이다. 독대 당사자들이 이후 하나같이 불행한 종말을 맞은 걸 보면 왕과의 독대는 약보다 독이었던 셈이다. 최근엔 일반 국민도 대통령과의 소통이 편지 인터넷 SNS 등 여러 채널로 이뤄진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육성이 전해지는 전화통화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북구청 정명희 청장에게 직접 전화해 13분간 대화를 나눴다. 기초연금 분담액 급증으로 인한 재정 악화를 하소연한 정 구청장의 편지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재정 자주도가 낮은 기초지자체의 기초연금 분담비율 조정을 약속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열린 귀와 눈을 갖고 직접 소통에 나서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전국 지자체의 공통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해소될 수는 없다. 정 구청장의 충정이 이해는 되지만 전화를 받은 그가 부산시 공무원들에게 단체 메신저까지 보내 “너무 가슴 떨리고 눈물이 나려 한다”며 왕조시대 임금 알현같은 반응을 보인 것도 구민의 선택을 받은 단체장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단체장이 늘어날지는 두고볼 일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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