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매년 하는 일이겠지만, 새로운 다짐들을 하고, 새로운 계획들을 세운다. 각자의 방법과 목표는 다르겠지만, 지난 과오를 떨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열정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본능적인 삶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그 본능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쓰고 있을까. 혹은 얼마나 지속하고 있을까. 그런 개인들이 만든 사회는 과연 더 좋아졌을까. 이러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다가온다. 스물네 살의 나이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의 삶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던 김용균 씨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에 익숙해지지도 못한 채 위험한 업무를 혼자 다 해야 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컴컴한 발전소에서 자비로 산 휴대용 손전등 하나를 들고서,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잘 작동하는지 안전장비 하나 없이 몸을 다 기계 속에 들여놓고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위험하고 혹독하게 일을 해야 했던 이유는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 번듯하게 자격증을 따고 전문 직업인이 되거나 고학력의 졸업장으로 본청에 입사할 수 없는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생명의 위협이었다.

고인이 된 김용균 씨와 같은 청년들은 이 땅에 너무나도 많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던 청년도, 생수 공장에서 혼자 일하다 프레스기계에 끼여 사망한 청년도, 택배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다 아무도 일러 주지 않아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사망한 청년도 비정규직이었기에 죽었다. 그리고 알려지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5개 발전기업에서 발생한 346건의 산재 중 무려 337건이 하청 노동자였다. 하청된 삶은 너무나 위험해서, 그들은 살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외쳐왔다.

그런데 이 외침은 사회에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의 유작 ‘레트로토피아’에서 날카롭게 비판했듯, “우리 시대에 ‘가치 없는 삶’이라는 꼬리표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선택하는 일이 갈수록 개인에게, 자업자득이라며 자책하도록 방치된 개인에게 ‘하청’되고 있다.” 그렇게 하청된 삶은 비단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스펙을 얻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얻은 몇몇 것을 먹고 입고 여행하는 것에 과도하게 열정을 쏟는 다수의 청년의 삶도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지속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더 소비적이고 낭비적인 형태의 삶을 살게 되는 것. 우리 모두는 미래가 불투명하고 모든 것이 개인의 탓으로 전환되어 벼랑 끝에 매달린 하청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산안법 개정을 위해 애썼다. 만약 구의역 김모 군의 죽음에, 생수공장 택배공장에서의 죽음에 누군가 법을 개정하고 처우를 개선했다면, 자신의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남은 이 땅의 청년들을 살려야 했고,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랬어야만 했는데 우리 모두가 하지 않았던 그 일을 해낸 어머니야말로 참된 삶을 사는 참된 인간이 아닐까. 아들의 죽음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저 개인의 운명이라 수긍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질문하고 돌을 던지고 바꾸어 내는 것. 더 나은 삶을, 더 행복한 삶을 꿈꾸는 한 인간인 어머니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낼 것이다.

김용균 씨의 죽음에 나는 무엇이라 답하는 삶을 살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하청의 삶과 생명을 살리는 참된 삶. 적어도 나의 삶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상대가 최선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과 결심을 하고 살겠다. 3일 만에 포기하는 그런 저열한 다짐이 아니어야 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삶을 기필코 살아내겠다는 다짐의 2019년을 살겠다. 그리고 이 다짐들이 모여 부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길 간절히 기원한다.

인디고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