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11일 발생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상시적 위험을 외주업체에 맡기는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된 참사”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법 개정을 더 미룬다는 건 직무유기”라고도 했다. 굳이 말할 나위도 없는 당연지사다. 하지만 실천 여부는 미지수다. 19대 국회 때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된 데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동종의 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으나 휴면 상태여서다.

한국당은 현재 위험의 외주화 관련법 처리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장이 태안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상시 업무의 사내 하도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한 상황에서 제1 야당이 방관한다는 건 공당의 책임을 저버린 행태다. 2012~2016년 일어난 발전소 안전사고(346건)의 97%가 하청 업무이고, 2008~2016년 산재 사망자 40명 중 93%가 하청 노동자로 나타났다. 이 통계에서 드러났듯이 위험의 외주화는 우리 산업계의 구조적 적폐가 분명하다. 이런데도 법 개정에 나서지 않는다면 위험을 외주화하는 원청업체의 공범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선 지난해 11월에도 보일러를 정비하던 하청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8월 태안화력발전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방치돼 왔고, 결국 지난 11일 같은 사고가 재발되고 말았다. 이런 것을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직무유기라 할까.

정치권의 외면과 방관 속에 지금도 애꿎은 목숨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단언컨대, 예고된 죽음을 막지 않거나 막지 못하는 정치는 ‘죽음의 정치’이자 ‘정치적 살인’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