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부산경찰서 서장실에서 한낮의 정적을 깨는 폭음이 울렸다. 고서상으로 변장한 의열단 단원 박재혁 의사가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에게 고서를 보여주는 척하다 숨겨온 폭탄을 던진 것이다. 하시모토 서장은 중상을 입었고 박 의사는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한 후 단식 끝에 숨진다.

일제 하인 1913년 문을 연 부산경찰서는 부산 최초의 경찰서이다. 부경근대사사료연구소에 따르면 애초 위치는 지금의 동광동 40계단 옆이었다. 광복 이후 국립경찰이 창설되면서 대창동 현위치로 옮겼다. 명칭도 ‘제15구경찰서’ ‘중부산경찰서’로 바뀌다가 1963년 이후 ‘부산중부경찰서’로 정착됐다. 1969년 지상 4층으로 개축됐는데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함께 최고령 경찰서 건물이다.

부산시청과 부산경찰청 등이 옮겨가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명실공히 부산의 중심이 중구이다 보니 중부경찰서 역시 사건사고의 한가운데 있었다. 시청 시경 세관 등 관공서와 금융기관, 유흥가와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등이 밀집해 치안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남포동과 충무동 일대 오락실 이권을 챙기며 성장한 신20세기파와 라이벌 칠성파의 대결은 영화 ‘친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시국사건의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1979년 10·26부마항쟁 때는 남포동 거리가 드러누운 시위대로 뒤덮였다. 1982년 정국을 얼어붙게 한 미 문화원 방화사건,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부산가톨릭센터 농성사건의 현장은 모두 대청동이었다. 인구도 적고 관할구역도 작으면서 큰 사건은 많다 보니 “중부서 출신 중엔 기가 센 형사가 많다”는 말이 부산경찰 사이엔 아직도 회자된다. 하지만 서면 해운대 쪽으로 도심이 옮겨가면서 중부서가 영도 동부 서부 강서경찰서와 함께 경찰서 규모가 작은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고 한다. 격세지감이 절로 든다.

중부경찰서가 어제 중앙동 부산세관 맞은편에서 신청사 착공식을 열었다. 2020년 10월 완공될 신청사는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지금 청사보다 3배 이상 커진다. 갈 일이 안 생기는 게 좋은 곳이 경찰서다. 그러나 경찰 없는 시민의 안전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현대사의 격랑 한가운데 있으면서 영욕을 함께 겪었을 중부서다. 그런 경찰서의 오랜 건물이 헐리고 새 청사가 지어지는 게 원도심 부활의 한 상징같기도 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