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는 각종 병원균과 면역세포 간 전쟁이 벌어진다. 가끔 세균과 바이러스라는 적군의 공격보다 면역세포라는 아군이 자기 조직을 공격하는 ‘오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던 사람이라면 북한군이 아니라 같은 아군에 의한 오발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거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때로는 기강이 풀려서.
이런 오발 사고로 생기는 병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아토피성 피부병을 포함한 알레르기, 류마티스 관절염, 원형탈모증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몸에 있는 혈액 속 백혈구는 각종 병원균과 싸우는 면역 시스템을 관장한다. 혈액을 타고 온몸을 순환하면서 우리 몸에 침입한 적과 대항해 싸우는 전사 역할을 한다. 면역시스템 고장으로 싸워야 할 병원균이 아니라 정상 세포를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긴다.
한 달 전에 정치부로 발령 나서 부산 정치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자가면역질환과 ‘오버랩’됐다. 직전에 의료와 과학을 담당해 그럴지도 모른다. 촛불 민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데 이어 6·13지방선거에서 부산 울산 경남(PK)이 ‘디비졌다’. 만년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PK 정치 권력이 23년 만에 바뀌었다. 시장·도지사는 물론 구청장·군수, 광역의회, 기초의회까지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20여 년 전 대학생 시절 총선, 대선이 끝나면 서울 친구들이 놀렸다. 부산은 시골이라고.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데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네.” 그 당시 부끄러웠던 기억을 오랫동안 지울 수 없어서인지 새로운 정치지형 변화에 거는 기대가 누구보다 컸다. 물론 지금도 크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오거돈 부산시장과 시의회가 예전과 달리 ‘다이내믹’해졌지만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BRT(간선급행버스체계)와 오페라하우스 공론화, 부산시 산하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시의회 인사청문회 도입과 후보 2명 사퇴, 박태수 부산시 정책특보와 공무원노조의 갈등…. 이런 문제는 졸지에, 준비 없이 이뤄져서 생긴 것 같다. 정치신인 상당수가 ‘문풍(문재인 바람)’ 덕분에 덜컥 당선되다 보니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민주당 한 구청장은 “솔직히 우리 당 시의원들이 관행에 젖어 개혁에 저항하는 공무원 조직을 겨눠야 하는데 앞으로 쏘고 뒤로 쏘고 시장한테도 쏘고 총알이 어디서 날라 올지 종잡을 수 없다”고 전했다. 피아 구분 없이 막 공격한다는 얘기다.
부산시 정무 라인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애초 오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시의회가 자유한국당이 장악할 경우 시정 수행에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했었다. 부산시의원 47명 중 41명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시 정무 라인의 걱정은 여전하다. 시의원 대부분이 초선이다 보니 예전처럼 다선의 의장단이나 상임위원장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의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듯이 물밑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장선거 당시 오 시장과 ‘원팀’ 멤버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도 날아갔다. 시의회가 시를 견제·감시해야 하는 존재 이유를 충실히 수행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같은 당 시장과 시의원들 간 유기적 협조가 없어 아쉽다는 정치적 해석도 있다.
PK 한국당도 그동안 중병 수준의 자가면역질환을 앓아오긴 마찬가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던 일당독점 정치 구도에 안주해 계파·골목 정치에만 몰두했다. 적지 않은 PK 중진 의원은 선수(選數)에 걸맞은 존재감이 없어 ‘시·구의원급 국회의원’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이들이 당 조직강화특위의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기생충 학자로 유명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형제가 많지 않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천식에 잘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경쟁(병원균)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면 천식에 잘 걸린다는 뜻이다. 기생충이 사라진 뒤 아토피 등 각종 알레르기가 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PK 정치권이 드디어 여야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면역력을 제대로 키울 기회를 만났다. 그래야 시민 삶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정치인은 더는 발붙일 수 없을 날이 올 것 같다.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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