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일 외교사절은 통신사(通信使)와 문위행(問慰行)으로 나뉜다. 전자는 임금이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에게 보내는 사절로, 그 우두머리인 정사(正使)를 고위직 문신이 맡았다. 후자는 일본의 외교 실무자인 대마도주에게 파견한 사절인데 정사가 역관이었다. 통신사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20차례에 그친 반면, 문위행은 1632년부터 1860년까지 54차례나 실시된 데다 양국 관계 유지를 위한 실무를 도맡았던 터라 조일 외교의 첨병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은 그런 문위행을 ‘역관사(譯官使)’라고 불렀다.

문위행에 참여한 역관들은 무역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 명약으로 인기가 높았던 인삼을 수출하거나 물소뿔 유황 등을 수입했다. 수출량이 제한된 인삼이나 금수품인 병기류를 밀수하기도 했다. 1663~64년 대마도에 간 문위행은 유황 2만 근과 석유황 1만1300근, 장검 200자루 등을 들여왔는데, 어영청과 훈련도감이 지불한 대금이 1만5000냥에 달했다. 정사 최상집을 비롯한 역관 65명으로 구성된 1721년 문위행은 인삼 200근 등을 몰래 거래하다 적발됐다.

대마도주는 이를 조선 정부에 알리지 않는 대신 역관들을 ‘약재 조사 사업’에 동원했다. 막부의 제8대 쇼군인 요시무네가 인삼 등 조선 약재 수입에 따른 막대한 은 유출을 막기 위해 ‘동의보감’에 기재된 약재들을 조사하는 사업이었다. 약점을 잡힌 역관들의 협조로 외국 반출이 금지된 인삼 종묘와 씨앗을 포함한 1200여 종의 조선 약재 정보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해당 역관들은 조선의 1급 산업기밀을 빼돌린 ‘산업 스파이’였던 셈이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고, 일본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인삼을 시험재배하는 등 수입품 국산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런 어두운 과거사도 있지만, 문위행 역관들이 조일 외교의 최전선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다 1703년 대마도를 눈앞에 두고 풍랑에 휩쓸려 100여 명이 숨지고, 1766년에는 오륙도 부근 해상에서 90여 명이 변을 당하는 등 희생도 속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추모사업은커녕 그런 사연을 아는 이도 거의 없다. 오히려 대마도민들이 비석과 제단을 설치해놓고 비명횡사한 조선 역관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니 부끄러움이 적지 않다. 인간사에는 빛과 그늘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조선통신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영광에 가려진 상처와 신음도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경식 논설위원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