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1930~1969) 시인이 쓴 ‘산문시1’의 백미는 마지막 구절이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 시인이 갈망하는 미래는 이 결구에 오롯이 담겨 있다. 광부 철학자 소설가 역장 농부 지휘자 극작가 시인 등등. 시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중립세상이기도 하다. 해 질 녘 대통령과 시인을 한자리에 모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게 하는 자전거와 막걸리는 그 세상을 상징한다.

신 시인의 꿈은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었더라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나마 제한적으로 실현됐을지도 모르겠다. 고인은 대통령 재임 시절 소백산 대강막걸리를 좋아해 여섯 잔을 연거푸 들이켠 적이 있고, 퇴임 후 봉하마을로 와선 농민들과 논두렁에 걸터앉아 새참으로 나온 상동탁주를 즐겨 마시기도 했다. 고인의 막걸리 사랑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모습과 어우러져 신 시인의 ‘산문시1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소박한 바람은 신 시인이나 노 대통령이나 장삼이사 서민이나 다르지 않다. “자전거 타고 가다 목 마를 때 마시는 막걸리 한잔 만한 즐거움이 있을까.”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소감이나 자신의 자전거 여행 행선지를 알리며 적당한 막걸리 집을 문의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만 봐도 그 마음이 짐작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를 싣고 가는 낭만은 시에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될 것 같다. 자전거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어제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경찰의 단속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05%를 넘으면 3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음주측정에 불응할 땐 범칙금액이 10만 원으로 대폭 가중된다고 한다. 위험수위를 넘은 자전거 음주운전 탓이다. 대한의학회는 지난해 19세 이상의 자전거 이용자 4833명 중 12.1%(586명)가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자전거 음주단속은 자전거 이용인구 1300만여 명 시대의 불가피한 조처라 하겠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막걸리 자전거의 낭만을 생각하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함을 누르기 어렵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