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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DMZ 평화의 트레일을 꿈꾸다 /이승렬

한반도 허리 옭아맨 사슬…248㎞, 7일 내 완주 가능

철수 GP서 숙식 충분해…DMZ 평화지대화 맞춰 세계적 명품길 키워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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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하고도 중순, 걷기에 참 좋은 시절이다. 부산 갈맷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이름난 ‘트레일’을 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우연히 직장 후배의 SNS에서 본 ‘DMZ(비무장지대) 트레일러닝’ 참가기가 걷기 욕구를 더 부추긴다. 이 친구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서부전선 남방한계선 일대에서 열린 100㎞ 달리기 대회에 참가, 완주까지 한 모양이다. 놀라움 반 부러움 반으로 감탄사만 연발하며 SNS 페이지를 보던 중, 참가자들이 GOP(일반초소) 철책선을 따라 달리는 사진 한 장에 유독 눈길이 갔다. 30년 전 군복무 시절이 떠올라서다.

그 무렵 최전방의 청춘들은 매일 걸어서 철책을 점검하고 밤에는 그 너머 어둠 속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지샜다. ‘바람도 숨이 멎는다’는 군가 가사가 딱 어울릴 정도로 세계 최강의 긴장감을 자랑하는 곳이 한반도의 GOP와 DMZ이다. 하지만 동 틀 무렵의 환상적인 풍경은 지친 청춘들을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었다. 철조망 너머 DMZ에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사이 고라니, 사슴 같은 동물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는다. DMZ도 아침 이 시간만은 더없이 평화로운 지상낙원이다. 매일 아침 철책을 따라 1시간가량 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30년 후 ‘민간인’들이 철책을 따라 걷고 뛰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꿈도 꾸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됐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한 그간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덕분일 게다. 이제 좀 더 ‘발칙한’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 꿈은 바로 DMZ 안쪽으로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을 열어보자는 것이다. DMZ가 어떤 곳인가. 정전협정서에 따라 서해에서 동해를 잇는 총연장 248㎞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씩 물러난 공간이다. 약 1000㎢에 달하는 면적은 한반도의 250분의 1에 해당하는 알토란 같은 땅이지만, 극소수의 군인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금단의 구역’이기도 하다. 그간 ‘한반도의 화약고’라 불리며 코리안 리스크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곳에서 양쪽 바다를 잇는 ‘DMZ 평화의 트레일’이 열린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 아닌가.

요원할 것 같지만 결코 이루지 못할 꿈도 아니다. 오히려 남북이 선제적으로 적극 논의해 볼 만한 일이다. 외국인을 포함한 민간 트레커들이 끊임없이 DMZ 안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걷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전쟁 억제 장치가 없다. 여건도 무르익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제시된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노력이 적잖은 진전을 이뤘다. 지난 14일 끝난 군사실무회담에서 남북 군 당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병력 축소, GP(근접감시초소) 10여 개씩 철수 및 향후 완전 철수, 철의 삼각지 전사자 유해 공동 발굴 등에 합의하고 실천방안을 논의했다. 구체적 논의 결과는 내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3차 정상회담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도 48개국 주한 대사단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DMZ 평화관광의 실질적 운용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DMZ 평화의 트레일’을 어떻게 조성, 운영할 수 있을까. 우선 안전을 위한 지뢰제거가 필요하다. 국방부에서 지뢰제거 특수부대 창설을 추진 중이라니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숙박시설도 다수 필요하다. 편도 250㎞ 이상인 트레일을 완주하기 위해선 최소 7일 이상 걸린다. 남측 60개, 북측 160개 안팎인 DMZ 내 GP의 병력을 철수시키고 숙박시설 및 쉼터로 활용하면 딱 좋다. 대부분 조망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1개 소대 병력(40명)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시설을 완비했다. 입장료 및 숙소 운영 수익금은 인도적 지원에 사용해도 좋을 성싶다. 군사분계선 남쪽과 북쪽에 따로 길을 만들어 왕복 500㎞의 풀코스를 완성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하루 50명으로 제한하는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랙’처럼 이곳에도 1일 입장객을 GP 최대 수용 가능인원 정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천혜의 생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미국의 비협조” 같은 비관적 전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할 뿐, 비핵화는 언젠가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따라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꿈을 이룰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걷기 분야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이렇게 말했다. “걷는다는 것은 지나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 ‘DMZ 평화의 트레일’을 열겠다는 꿈은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민족의 지나온 길을 다져서 공동번영으로 나아갈 새 길을 꿈꾸는 일이다. 화약과 철조망 가시로 상처 입은 한반도의 허리에 평화와 생명의 허리띠를 새로 채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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