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햇살이 따뜻하던 어느 날, 화사한 웃음을 띤 고객 한 분이 방문했다. 어색한 듯 조심스레 창구에 앉아서 “제가 예전에 샀던 주식 찾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한 뒤 고객이 작성한 신청 서류에는 ‘신라젠’이라고 적혀 있었다. 2006년 설립된 이 회사의 주식은 액면가 500원, 고객이 방문한 날 주식시장에서 10만 원을 웃도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액면가로 주식을 샀다면 약 200배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옛날에 친구가 사업한다고 미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여윳돈 조금 보태주었는데 주식을 주더라고요. 내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업이라 잊고 살았는데….”
여름이 시작되는 지난 6월 초 오후. 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한 고객이 방문했다. 창구에 앉기가 무섭게 툭하고 서류를 던지고는 꺼낸 첫마디. “내 주식 주이소. 10만 주 모두 1주권으로 10만 장.”
하지만 이 회사는 청산 절차가 진행 중이었고, 고객이 보유한 주식은 1원의 가치도 없는 휴지와 같은 상태였다. 이 내용을 고객에게 설명하자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고 알고 있는데 하도 억울해서. 친구 놈이 대박칠 주식이니 투자하라고 하는 말만 믿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투자를 했는데…” 라고 울상을 지었다.
한 사람은 친구가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도와 준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수익이라는 유혹에 빠져 과도하게 투자한 것이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이해하는 데 위의 두 가지 사례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반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은 군중을 의미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합친 것으로, 창의적 아이템을 가진 초기 기업들이 중개업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집단지성을 활용해 다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1월 26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제도가 도입된 지 2년6개월이 지난 현재 크라우드펀딩 성공기업 364개사, 펀딩 성공금액 659억 원, 누적 투자자 수가 34만 명에 이르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성장 지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창업 및 벤처기업 CEO들과 접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직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이들 기업에게 실질적인 성장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크라우드펀딩을 해왔다. 예를 들면 지인이 사업한다고 하면 개업 선물을 하거나 사업자금으로 쓰라고 봉투를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지인의 사업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예측이나 투자 수익률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자금과 지원은 창업 및 벤처기업에게 성공의 디딤돌로 쓰인다. 이렇게 창업 및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주변의 지인들을 3F(Family, Friend, Fool·Fan)라고 하며, 이들이 크라우드펀딩의 초기 투자자(후원자)이다. 크라우드펀딩 성공사례를 보면 3F들의 도움으로 창업 및 벤처기업이 성공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탁결제원은 오는 11월 초 ‘2018, 부산 크라우드펀딩 로드쇼’를 준비 중이다. 부산지역의 창업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우수기업을 선발했고, 크라우드펀딩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달 중순부터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이 크라우드펀딩 성공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3F들의 활동이 필요하다. 부산에서 3F의 힘으로 크라우드펀딩 성공 기업을 배출하고 그들이 이를 기반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3F들의 지원으로 창업 및 벤처기업의 성공모델이 만들어지면 많은 청년과 벤처 기업가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지 않을까.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가을. 나는 도화지에 ‘크라우드펀딩 성공 1위 도시 부산’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부산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도시가 되고 “창업으로 성공하려면 부산으로 가자”며 청년과 벤처기업가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는 멋진 날을 그려본다.
한국예탁결제원 부산업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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