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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어른들은 모르는 방탄소년단의 ‘방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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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09 18:44:17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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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전후한 남성들이 아이돌 그룹에 관심 갖는 경우는 드물다. 영어가 잔뜩 섞이고 토막토막 분절되는 요즘 노래는 어리둥절하다. 그런데 빌보드를 점령한 BTS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의 노래엔 흥겨운 리듬과 10·20대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분노·고민이 가사에 담겨 있었다.


BTS의 성공신화에 자극받아 새로운 한류를 준비해도 좋다. 세계 시장에 대한 더 활발한 진출을 모색해도 좋다. 하지만 그런 산업논리에 앞서야 할 건 이들이 대변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노래 한 소절도 들어보지 않았을 정치인들, 다 된 상에 숟가락 얹지는 말자.
   
매주 한 차례 칼럼을 기고하다 보면 어떤 주엔 글감이 마땅찮아 고심할 때도 있고, 또 어떤 주엔 글 쓸 거리가 쏟아져 무얼 고르나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도 있다. 내게 지난주는 후자였다. 북핵 특사의 평양 방문, 정기국회 개회 같은 국가 단위의 뉴스도 있었고 김해공항 확장과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둘러싼 논란 등 지역 뉴스도 있었다. 그래도 왠지 방탄소년단(이하 BTS)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환갑을 전후한 내 또래의 평범한 남성들이 아이돌그룹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그룹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다. 나만 해도 어쩌다 노래방엘 가면 애창곡이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이 아니었던가. 한껏 흥을 내봤댔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정도가 상한선이다. 그런데, 언감생심 BTS라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내가 BTS의 뮤직비디오를 본 건 극히 최근이다. 이따금 TV 뉴스에서 이 보이그룹이 미국에서 ‘빌보드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릴 들었어도 한 귀로 흘려들었으니. 그런데 며칠 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3개월 만에 두 번이나 1위에 올랐고,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대형 스타디움에서 벌어진다는 월드투어의 티켓 수십만 장이 일찌감치 매진됐다는 뉴스를 보고는 호기심이 일었던 거다. 아무렴, 천하의 빌보드 아닌가. 대체 어떤 아이들이기에….

그래서 유튜브에 오른 그들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실황 동영상을 찾아본 것. 처음엔 ‘어쩌나 보자’는 심사로 팔짱을 끼고 심드렁하게 모니터를 지켜보았더랬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춤과 노래에 빨려든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던 거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몰래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것을 깨닫곤 헤식게 웃을 수밖에.

‘LOVE YOURSELF’의 기승전결 시리즈를 포함해 예닐곱 개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첫 시청 소감은 이랬다. ‘흠, 꽤 때깔 있게 빠졌는데?’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충분히 세계시장에 먹힐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힙합을 섞은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에 쉽게 따라 하기 힘든 비보잉 수준의 춤, 그리고 세련된 사운드 믹싱, CG를 이용한 현란한 영상효과 등등. 대중음악을 모르는 내 눈으로도 이쯤이면 왕년의 마돈나, 레이디 가가의 무대에 못잖다 싶었던 것.

그런데, 나는 이윽고 그들의 노래에 ‘서사(敍事)’가 잠복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다시 말하자면, 단순한 감각적 세련됨이나 말초적 흥겨움을 넘어선 세상에 대한 발언이 서로 연결된 이야기 형식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이런 가사다. ‘Yeah 누가 내 수저 더럽대 /I don’t care 마이크 잡음 금수저 여럿 패 /Mic mic bungee, Bright light 전진 /망할 거 같았겠지만 I’m fine, sorry /미안해 Billboard 미안해 worldwide /아들이 넘 잘나가서 미안해 엄마 /대신해줘 니가 못한 효도 /우리 콘서트 절대 없어 포도 /이미 황금빛 황금빛 나의 성공 /I’m so firin’ firin’ 성화봉송 /너는 황급히 황급히 도망 숑숑 /How you dare’.
구문이 완결되고 서정성을 가진 노래를 선호하는 우리 세대에겐 영어가 잔뜩 섞이고 토막토막 분절되는 이런 가사가 어리둥절하긴 하다. 그래도 대강 이런 뜻이 아닐까. ‘금수저들이 우리더러 흙수저라고 얕봤지만 상관 않는다. 사람들이 우리가 망할 거로 생각했지만, 봐라, 우린 이렇게 떴지 않냐? 우리 성공을 보고 우릴 놀리던 사람들이 꽁무니 치지 않냐’. 흥겨운 리듬에 실린 그 노래 속엔 ‘금수저-흙수저’로 구별 지어 평범한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1990년대를 풍미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상했다. 그들도 파격적인 리듬과 춤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하지 않았던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당대 젊은이들에게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건, 어른들이 모르는 그들의 아픔을 그들 세대의 표현방식으로 대변했다는 데 있지 않았나. ‘교실 이데아’의 한 구절,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말이다.

BTS의 서사는 ‘야자’라고 줄여 부르는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부모와의 갈등 따위 10대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N포 세대, 열정페이 같은 20대의 고민을 아우르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의 ‘LOVE YOURSELF’ 연작에선 ‘그럼에도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 그러니 젊은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자신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나아가 위무해 주는 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이 일곱 명의 또래에게 짙은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한국어 가사의 장벽을 넘어 세계 젊은이들의 정서까지 파고들지 않나 싶은 거다.

그들이 세계 시장에서 빛나는 성공을 거둔 것은 지난 20년 끊임없이 세계의 문을 두드린 K-POP이 주도한 ‘한류’의 결정판이랄 수도 있겠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총아인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거다. 그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려 팬과 소통한다. 디지털 공간 자체를 놀이터로 인식하는 팬들은 BTS의 뮤직비디오에 다투어 조회 수를 올려준다. 그들의 노래와 활약상을 편집해 자발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한다. 한국식 팬클럽 문화가 구미에까지 수출돼 팬클럽 ‘아미’의 수십만 해외 회원들은 BTS의 공연에 운집해 ‘떼창’으로 환호한다.

다시 말해, BTS의 성공은 대규모 물량을 퍼부어 홍보하고 기획해 세계시장에의 진출을 시도했던 기존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방식과는 다른, SNS란 무기를 활용해 전 세계 팬의 입소문을 탄 자연발생적인 문화현상이 아닐까. 그런 점에선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슷하다고도 하겠지만, 그 노래가 일회성 센세이션이었다면 BTS는 세계 주류 음악시장에 안착한 느낌이다.

BTS의 성공신화에 자극받아 새로운 한류를 준비해도 좋다.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 대한 더 활발한 진출을 모색해도 좋다. 하지만 그런 산업 논리에 앞서야 할 건 이들이 대변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기성세대들이 읽어내는 게 아닐까. 단단하게 고착된 기성질서의 지각 밑에서 용암처럼 흐르며 들끓는 젊은이들의 분노를 읽어내는 게 아닐까. 어른들이 모르는 새 자기들끼리 구축한 신세대식 소통과 문화 소비 양식을 이해하는 게 아닐까. BTS 성공의 숨은 요인은 인종과 문화,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단일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지구촌 젊은이들의 새로운 글로벌리즘이다. 그러니 내 생각엔 디지털에 기반을 둔 21세기의 문화적 소비 기호를 문화학자들이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판국에 BTS의 노래 한 소절 들어보지 않은 정치인들이 빌보드 차트 1위니, 월드투어 매진이니 하는 말만 듣고 문화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느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무래도 염치없는 짓인 것 같다. 그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며 하루 열두 시간씩 춤과 노래 연습을 할 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니 다 차린 상에 숟가락 얹자는 꼴이 아닌가. 어떤 국회의원들이 ‘국위 선양’이니 뭐니 개발독재시대의 낡은 레토릭을 동원해 BTS에 병역 특례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뒤늦게 생색내는 꼴처럼 보인다.

지금 그들은 이렇게 어른을 야유한다.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 해도 I don’t care /I’m proud of it 난 자유롭네 /No more irony 나는 항상 나였기에 /(…)뭘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셔 /I do what I do, 그니까 넌 너나 잘하셔’.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 /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 버리기엔 /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글쎄, 내가 쓴 이 글 역시 ‘군맹무상(群盲撫象)’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들이여, 자녀들의, 청년들의 좌절과 꿈을 이해하고 싶거든 오늘 퇴근해서 일단 BTS 노래를 들어보라.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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