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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고통의 자리 /이정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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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02 18:47:0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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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밤을 바르다가 오른쪽 입술이 부었다고 느꼈다. 벌레에 물렸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다음 날 양치질을 하는데 왼쪽 입술 사이로 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꽉 다문다고 다물었는데 물로 입안을 헹굴 때마다 왼쪽 입술 사이로 풋, 풋, 물총 쏘듯 물줄기가 새어 나왔다. 오른쪽 입술이 부어서 그런 줄 알았다. 웃음이 났다. 어라? 세수를 하는데 왼쪽 눈에 비눗물이 자꾸 들어갔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을 씻었다. 세수를 마치고 나자 거울 속에는 한쪽 눈이 벌건 여자가 앞섶과 옷소매까지 몽땅 젖은 채로 서 있었다. 밥을 먹었다. 세상에! 음식을 씹을 때마다 왼쪽 입 밖으로 물과 음식이 주룩, 흘렀다. 매일 아무 일 없이 영위하던 일상의 한쪽 면이 찌그러졌다. 도시철도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찌그러진 일상에 대해 검색했다. 말로만 듣던 ‘입 돌아가는 병(구안와사)’ 증상이었다. 최근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되짚어보았다. 입안이 헐고 왼쪽 목 뒤와 어깨가 2주 가까이 아팠는데 누구에게나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어깨가 아파 찾아간 한의원에서 말초신경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서 한약을 팔기 위한 상술로 여겼다. 그때 그 한의사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점심시간에 근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신경과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중에는 턱과 눈썹 위에 전기 자극을 줘서 그 신호를 제대로 감지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있는데 전기가 흐를 때마다 아프고 찌릿한 느낌이 몹시 불쾌했다. 일부러 통증(전기자극)을 줘서 고통의 자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의사는 ‘헤르페스(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한 신경감염성 안면마비’로 진단했다. 작년에는 대상포진을 앓았는데 올해는 병이 업그레이드되어 안면마비까지 온 것이다.

늘 해오던 평범한 일들을 어느 날 갑자기 하기 힘들고 불편해지면, 사람들은 그제야 망가진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택한다. 수긍하거나 피하거나. 작년 병을 앓고 난 이후부터 몸 관리를 한답시고 좋은 식재료를 챙기고 요가 강좌를 듣거나 몸에 좋다는 약을 챙겨 먹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금세 끝났다. 몸이 돌아오자마자 하루 이틀 빠지기 시작한 운동은 아예 끊어버렸고 생활 패턴이나 식습관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일 년 동안 다시 쌓이면서 일상이 망가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던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의 조상님이 분명하다!

처방 약을 기다리며 SNS를 살펴봤다. 두 가지 헤드라인 뉴스가 눈에 박혔다. ‘안희정 무죄’와 ‘대전 길고양이 살해사건’ 기사가 그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고통의 자리는 얼마든지 있고 그 자리 또한 내 얼굴에 일어난 마비와 비슷해 보였다. 수긍하지 않고 피하고 살아도 살아졌을 고통의 자리들.

‘안희정 무죄’ 사건은 미투로 촉발된 중요한 사회적 흐름을 일부러 마비시킨 사건 아닐까. 아니, 마비된 지점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김지은 씨’라는 전기 자극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전기 자극을 통해 불편한 지점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모두 피하기 바쁜 눈치다. 법원을 비롯한 힘을 쥔 자들은 고통의 자리보다 고통을 확인하게 한 전기 자극이 나빴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대전의 한 노인은 몇 년에 걸쳐서 길고양이들을 집요하게 독살해왔다. 그 수가 자그마치 천여 마리가 넘을 거로 추산된다. 목격한 사람이 있고 노인 스스로 범죄를 실토하고 독약을 뿌린 음식물 자리까지 가서 찾아 보여줬다는데 경찰은 그 노인을 잡아가지 않았다. 고양이 사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무언가가 ‘죽은 상태’로 발견되어야 ‘일’이라고 여기는 이 경우, 어느 부위가 마비되어야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이 고통의 자리를 그저 동물의 자리라서 쉽게 넘겨도 되는 것일까? 이 자리에 나의 반려동물이, 나의 어린 자식이 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할까?
안면마비 진단을 받은 지 2주가 흘렀다. 마비를 통해 고통의 자리를 확인했다면 이제부터는 고통의 자리를 넘어선 더 넓은 생활의 자리로 치료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나는 찌그러진 일상을 펴기 위해 약 먹고 운동하고 식습관을 점검한다. 마비가 오지 않도록, 아니 마비가 다시 찾아와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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