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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경애하는 마음 /박형준

제대로 된 애도·공감은 다른 삶의 가능성 제시

정치적 당파·이념 떠나 순정한 영혼 추모돼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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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08 19:10:5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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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강원도 횡성의 작은 마을에 있는 ‘예버덩 문학의 집’이라는 곳으로 집필여행을 다녀왔다. 시인의 넉넉한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은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어느 인간적인 국회의원의 비보를 전해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치 논평을 하려는 게 아니라, 결코 폐기해서는 안 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출판된 김금희의 신작 소설은 애척(哀戚)의 부스러기가 쓸모없는 정념의 잔여물이 아니라는 점을 사유하게 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2018)은 탄탄한 문체와 구성을 바탕으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분유하는 동안 융기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반도미싱’에서 근무하는 박경애와 공상수이다. 경애는 구조조정 당시 해고반대 파업을 거쳐 겨우 복직했으나, 직장과 노조에서 동시에 따돌림을 받는다. 상수는 눈치 없이 사고만 치고 영업실적도 형편없어 승진에서 배제된 끈 떨어진 낙하산이다. 팀장이긴 하지만 부하직원이 없는 ‘팀장대리’ 상수가 어느 날 회사에 팀원 배정을 요청하자, 곤혹스러워하던 간부들은 그를 달랠 임시방편으로 잉여직원 박 주임을 공 팀장의 사무실로 배치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가 “고통을 공유”하는 애틋한 관계로 변화되는 과정으로 전개되고 있다. ‘경애’와 ‘상수’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소셜네트워크 페이지를 통해 이미 접속되어 있었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둘은 베트남 해외지사에서 함께 일하며 공통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1999년 갑작스러운 화재로 세상을 떠난 친구 ‘은총’에 대한 기억이다. 열일곱 소년의 황망한 죽음은 두 사람에게 삭제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기성세대는 은총의 화재 사건을 은폐하고 봉합하려 하지만, 경애와 상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경애는 너무 힘든 나머지, “모든 것을 느끼는 마음 따위는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야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E’라고 불리는 은총에 대한 죽음을 망각하라고 종용하지만, 두 사람은 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그를 잊지 않는다. 김금희식으로 말하자면, 애도와 공감의 마음은 끝내 폐기되지 않은 셈이다(“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물론 E를 집어삼킨 화염의 진실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죄 없는 아이들을 수장시킨 그날의 바다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마저 태워버린 어느 망루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비약하지는 말자. 작가는 우리가 감지해야 하는 사회적 고통의 최대치를 상상하게 하고 있을 뿐, 그 어떤 참담한 사건도 서사적 목적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소재화하거나 전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일까. 경애와 상수는 역사적 대의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주위에 만연한 기득권과 싸운다. 두 사람은 관행(‘유도리’)이라 불리는 부정부패와 단절하며 영업 성과를 올리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박 주임은 호찌민 지점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의 리베이트 비리를 직감하고 현지 관리자에게 경고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한국으로 소환되어 좌천되고 만다. 상수는 부당한 인사에 분기하고 경애는 회사와 힘든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경애와 상수는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은총에 대한 ‘마음-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서로를 경애(敬愛)하는 마음을 폐기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굳이 저명한 인문학자의 어록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마음이 단순한 정조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 변화의 동력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소설가 김금희는 슬픔, 분노, 갈구, 용서, 동정, 연민, 회한, 불안, 불편, 혐오, 야속함, 서운함, 위기감, 미안함, 그리움, 외로움, 애틋함, 그리고 경애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고 있던 ‘온갖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감정의 외양을 과잉 묘사하거나 분출하지 않는다. ‘경애의 마음’이 만남과 이별, 사랑과 분노의 경계에 걸쳐 있으면서도, 신파조의 연애담이나 교조적 도덕주의로 진주하지 않는 까닭이다.

인간이 존재의 유한성을 지각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지평을 모색할 수 있듯, 우리는 제대로 된 애도와 공감을 통해서만 다른 삶의 가능성을 개시할 수 있다. 정치적 당파나 이념을 떠나서,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자 했던 순정한 영혼의 마지막만큼은 ‘경애하는 마음’으로 추모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작은 마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절망적이지 않은가.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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