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은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 호천마을의 주민들이 급기야 관광객을 기피하는 ‘투어리즘 포비아’를 겪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호천마을은 지난해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 방영 후 지금까지 여러 방송사에서 다섯 차례나 촬영이 이뤄졌다. 덩달아 외지인들이 밤낮 없이 찾아들면서 소음, 주차, 쓰레기 문제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까지 빚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하지만 호천마을주민협의회를 중심으로 주민과 관광객이 상생하는 방안을 슬기롭게 모색해가고 있다니 반갑고 고무적이다.

주민협의회가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관광객이 집중되는 드라마 세트장을 옮기고, 주민센터에서 공용마대를 지원받아 마을청소에 나선 것이다. 드라마 촬영 일정도 주민 불편이 적은 시간대로 조정하는 정도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주도한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주목을 받는 마을의 주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넘쳐나는 관광객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요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은 관광객들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매주 마을입구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북촌마을사태의 경우 서울시와 종로구도 뾰족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통 마을 모습의 명소가 겪는 고충은 관광 수요를 업고 집값이 폭등해 원주민이 도리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아니면 주민들이 관광객 등쌀에 못 이겨 이들을 외면하는 ‘투어리즘 포비아’다. 관할 지자체도 주민과 관광객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골머리를 앓는 사안들이다. 호천마을은 주민들이 긍정적인 방향의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지자체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고 주민들과 공조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