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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한진 갑질’ 사건의 또 다른 질문, 행복 /조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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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04 19:23:5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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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놀랐다. 검색창에 ‘한진’이라고 치니 ‘갑질’이라는 낱말이 절로 따라붙어 ‘한진 갑질’이란 말이 자동생성된다. Gapjil(갑질)이라는 낱말이 위키피디아에 올라 ‘어엿한’ 국제적 보편성을 얻어가는 지경을 넘어, ‘한진 갑질’ 자체가 보통명사로 자리 잡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다.

조현민 이명희 조양호 조현아로 이어지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사건은 참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도 길게 이 사건을 접하다 보니, 한진그룹 총수 일가 갑질 당사자들을 향한 분개와 상처 받은 이들에 대한 공감을 넘어 완연히 다른 차원으로 생각이 뻗어간다. ‘그들은 대체 언제 행복했을까?’ 이 물음이 떠오른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들’이란 한진그룹 총수 일가 갑질 당사자이다. 살면서 느낀 행복을 나는 두 가지로 대별하곤 한다. 하나는 내면에서 차올라오는 기쁨이나 행복감이다. 충만감 같은 것. 따뜻하고 오래가며 왠지 내가 좋은 쪽으로 변한 듯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는 바깥에서 주어지는 행복감이다. 복권 당첨 같은 외부 자극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경우인데 이 또한 매우 훌륭한 감정 경험이다.

여기서는 내면에서 차 올라오는 행복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관계’를 북돋는 선의의 행동은 내면에서 차오르는 기쁨을 준다. 인간의 본질 안에 ‘관계 맺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진화할 때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집단)이었다. 인간이란 말 자체가 인(人)+간(間)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관계는 인간의 본질이다. 우리 슬픔도 기쁨도 대부분 거기서 온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에서 어리고 고통스러운 코제트의 손을 장발장이 잡아주었을 때, 장발장의 내면에 충만감이 차올랐다. 행복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코제트에 대한 장발장의 그 깊고 오랜 사랑을 설명할 수 없다. 코제트와 장발장은 혈연이 없음에도 딸과 아버지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를 바탕으로 ‘레미제라블’의 모든 감동을 창조한다. 왜 유발 하라리가 역저 ‘사피엔스’에서 인류 발전 원동력 하나를 “뒷담화”라 했겠는가. 뒷담화의 요체는 정보를 나누는 관계성이다.

이 관계를 북돋우면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관계를 파괴하면 인간은 불편하다. 쉽게 말해, 불행해진다. 적어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런데 한진 총수 일가 갑질 사례를 보면, 대부분 이 관계를 파괴한다. 관계가 파괴되면서 생긴 피해와 아픔은 고스란히 약자에게 억울하고 부당하게 전가됐다. 여기서 사회적 공분이 생겼다. 그렇다면 갑질을 일삼은 강자는 행복했을까? 그랬을 리 없다. 관계가 파괴됐는데 행복은 무슨!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내 주장을 가만히 듣던 인문학자가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주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 자녀들(조현아 조현민 등을 지칭한다)은 엄마가 손수 정성스레 지어준 따뜻한 밥과 국과 반찬을 먹으며 자랐을까요? 먹어보기는 했을까요?” 이 말을 듣자 한진그룹 총수 일가 자택에서 일했다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이 떠올랐다. 이명희 씨 ‘갑질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도 그 구박과 갑질에서 무사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지은 밥을 오래 먹었겠구나.

나의 선배 중에는 집에 TV가 없고, 여유를 내 책을 많이 읽으며, 커피는 직접 볶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되 수제 맥주와 와인은 조금씩 즐기고, 산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있다. 아이들도 잘 키웠다. ‘일찌감치 소확행’ 가족이다. 이런 삶의 모습이 근사해 보인다기보다는 자본과 광고의 공세와 유행의 열풍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가 되어 나의 행복을 가꾸는 모습이 안정감과 환한 느낌을 준다. 이런 효과를 ‘소확행의 진보적 기능’이라 해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상상이지만, 이런 사람이 조금씩 는다고 치자.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다양성을 즐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나올 확률이 조금 더 높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사회적 확장판이 이 모습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문화도시’의 한 얼굴이기도 하다. 한진 갑질 사건은 행복의 조건과 행복의 자격을 생각할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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