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에서는 스포츠도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각종 경기의 승부에 거는 전체 판돈이 한 해에만 1000억 달러를 웃도는 걸로 추산되면서다. 이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불법으로 이뤄졌다. 이런 데다 도박중독자 중 90%가 절도·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80%는 자살을 생각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그 중 15%는 실제로 자살을 기도한다니, 최대 사회문제가 되고도 남았다.

그럼에도 미국 내 스포츠도박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1983년 80억 달러이던 것이 1995년에는 840억 달러 규모로 10배 이상 늘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 전역의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은 연간 1500억 달러(약 160조 원)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연간 예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스포츠도박은 해당 경기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 요소가 더 강하다. 승부조작 사건만 해도 대다수가 도박과 연관돼 있다. 그러니 스포츠의 순수성과 공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안타 보유자(개인통산 4256안타)인 피터 로즈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1989년 신시내티 감독 재직 시절 자신의 경기에 돈을 거는 등 승부조작을 벌인 혐의로 제명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수가 연루된 불법 스포츠도박 사건이 잊을 만하면 터진다. 최근에는 프로축구 K리그의 어느 선수가 불법 베팅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불법 도박시장은 약 84조 원 규모인데, 그중 불법 스포츠도박이 26%(약 22조 원)라고 한다. 정부의 합법 사업인 스포츠토토의 6배에 달한다.

엊그제 미국 대법원이 스포츠도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연방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스포츠 베팅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허용한 셈이다. 허용 여부를 각 주(州)에서 판단하도록 했으니, 세수(稅收) 증대를 위해 관련 사업에 앞다퉈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번 판결 이후 미국·영국 도박업체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고, 미국게임협회 등은 경제적 파급효과와 함께 일자리가 15만여 개 증가할 거라고 반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스포츠계는 걱정이 태산이다. 메이저리그는 “이 판결이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당장 우려를 나타냈다. 스포츠경기 본연의 모습이 자칫 도박 광풍에 휘말리고 훼손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끔찍한 일은 없어야 하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