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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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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13 19:06:1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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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꽃은 단연 이팝나무 꽃이다. 최근엔 가로수로 많이 심는지 보슬보슬 흰 꽃무리를 인 이팝나무 덕분에 길이 환하다. 작은 꽃들이 촘촘히 모여 고깔 같은 둥근 꽃무리를 이루는데 막상 각각의 꽃잎은 가늘고 길어서 아릿하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팝나무 꽃이 환상적으로 만개한 덕에 고전적으로 말해보았다. “올해 농사는 풍년이겠구나.”

며칠 전 아버지 기일에 처음으로 참례를 못 했다. 여태껏 없던 일이라 엄마는 속으로는 섭섭했겠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버이날 전날에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밥을 먹고 추모공원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 여자 다섯은 가벼운, 정말 가벼운 쇼핑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터라 서로 옷을 권해주고 수다를 떠느라 시간이 휙 지났다. 마음은 바쁜데 어린이날 행사에서 받아 차에 싣고 있던 모종을 밭에 놓고 가야 했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오전까지 비가 와서 땅이 질었는데 먼저 들어간 내 차를 보고 동생이 별 생각 없이 따라 들어오다가 진흙에 빠져 버렸다. 바퀴 앞뒤로 종이박스를 깐다 어쩐다 별짓을 다해도 바퀴에 진흙만 붙을 뿐 차는 꼼짝을 안 했다. 견인차를 불렀다.

경적을 울리며 견인차는 신속하게 도착했다. 우리는 안도했고 파릇한 청년인 기사가 트럭에서 사뿐 뛰어내렸다. 이제 상황 끝, 하는 순간 오 마이 갓, 동생 차에 다가가던 트럭이 슬슬슬 미끄러지더니 역시나 꼼짝을 못한다. 그래도 빨리 이 순간을 탈출하겠지? 견인차니까. 기사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그 모두는 무의미했고 시간은 흘러갔다. 추모공원 운영시간을 확인한다. 아직은 괜찮아…. 차는 그저 달리는 거라는 것만 아는 다섯 명의 여자 앞에서 경험치가 짧은 청년기사는 애를 쓰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어디선가 꽤 큰 새 소리가 들린다. 무슨 새지 싶어 위를 보니 아무것도 없고 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린다. 둘러보니 흰뺨검둥오리 다섯 마리가 줄지어 매화나무 아래 풀밭 위를 걸어 다닌다. 어수선한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는지 고개를 풀숲에 묻고 꽥꽥거리는 오리들 때문에 우리는 긴장이 풀린다. “쇼핑하고 놀다가 온다고 아빠가 화났나 보다” 둘째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아빠는 우리가 예쁘게 하고 있는 거 좋아했잖아.” 막내가 받아준다. 그러는 사이 오리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진흙에 빠진 승용차와 그를 구하러 왔다가 빠진 견인차는 결국 크레인이 오고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의 추모공원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나무들은 키가 많이 자랐고 담장의 덩굴장미는 색이 더 짙어졌다. 자주색 카네이션 화분을 앞에 놓고 절을 올렸다. 쇼핑 조금만 하고 가자고 먼저 말했던 둘째는 절을 조금 더 오래 했다.
아버지 가신 지 9년이 지났다. 지상의 가장 큰 사랑을 주신 아버지. 만성신부전증과 함께 찾아온 갖은 합병증으로 고생하셨는데 마지막엔 치매로 한밤중에 집을 나가시는 바람에 온 식구가 부산 곳곳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도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대로 못 찾을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새벽녘에 작은아버지 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택시를 타고 오셨다고 했다. 아버지 고향이었다. 거기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셨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 곳에나 내려놓는 택시 기사도 있었다. 아버지는 차비를 보내주겠다고 가지고 있던 약봉지에 기사의 전화번호를 받아놓으셨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유난히 슈트 핏이 좋았고 긴 병원 생활에도 언제나 깔끔하셨다. 젊은 시절엔 외항선을 타느라 1~2년씩 바다에 계셨는데 집에 계실 동안은 아버지가 싸주는 도시락, 일요일 아침의 토스터, 하교 후의 도넛 등으로 우리는 입이 즐거웠다.

시간은 짧았다. 아버지는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시고 보름을 버티다가 가셨다. 정신이 맑을 때 그동안 정말 고마웠었다고, 사랑한다고, 아버지 딸이어서 좋았다고, 이런 이별의 말 한마디를 못 하고 보내서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가시고 한 달이 채 못 돼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를 하셨다. 그해 오월은 깊은 슬픔이었다. 오월엔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눈물이 수위를 높인다.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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