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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한국 보수, 날개 없는 추락을 멈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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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07 19:11:40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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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의 자승자박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문제의 근원이 홍준표의 막말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4년은 시스템이고 뭐고 없이 자격 없는 사인(私人)이 나랏일을 주물렀다는 게 아니었던가. 이명박 시대는 또 어땠나. 나라 창고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었다고나 해야 할까.


한국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보수가 정신 차리기를 바란다. 수구·극우세력과 단호히 결별하고 대안적 보수담론을 재구성해 낼 능력을 갖춘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날 수 있느냐에 한국 보수의 사활이 걸려 있지 않을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경구는 상투적일지라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남북 화해 국면에서 보수정당의 민낯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언필칭 한국 보수의 본류라고 자임하는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문재인-김정은 회담’에 막말을 쏟아낸 걸 보고 혀를 찬 국민이 대다수다. 내가 이번 글에서 ‘한국 보수의 위기’를 화두(?) 삼기로 마음먹은 것도 “남북회담은 위장평화쇼”라느니, “김정은과 주사파의 숨은 합의”라느니,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지도 모르겠다”느니 침을 튀기며 깎아내리는 홍준표 대표에 대한 측은지심의 발로 때문이다.

그럴 가치도 없으니 그의 발언을 조목조목 따지진 않겠다. 어쨌거나 보수층 국민조차 고개를 가로저으니 딱하다. 남북 정상회담 다음 날 실시된 어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회담에 대한 지지율이 무려 88.4%로 나타났다. 보수층도 80% 가깝다는 거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85.7%였다.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여론조사들도 추이는 비슷했다.

10명 중 9명 가깝게 남북회담을 지지한다면 이 문제에 관한 한 진보, 보수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뜻이다. 그럼 홍준표는 오로지 국민 10%를 바라보고 무리한 언행을 반복하는 걸까. 유권자의 마음도 읽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나 뇌까리는 제1야당의 지도자라니 딱한 마음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불리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가짜 여론조사라고 자기최면만 걸면 속이 편해지나. 몸뚱이는 내놓고 머리만 풀숲에 처박은 까투리 꼴이랄까. 그러니 자당의 지방선거 후보들조차 “홍준표,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아우성치지 않나.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 더 본질적(?)인 데 있다. 보수정당의 자승자박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문제의 근원이 홍준표의 막말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글쎄, 한국 보수의 병이 생각보다 깊은 모양이다. 그들 자신도 제 병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할 만큼. 한국의 보수가 병상에 드러누운 건 가깝게만 따져도 박근혜의 국정 농단 무렵이 아니었나. 그때 국민은 보수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던 거다. 보수란 게 무언가. 나라의 안전과 사회의 안정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는 세력이 아닌가. 변화는 느리지만 원칙과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나라를 경영한다는 사람들 아닌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이도 그들이다.

그런데, 박근혜 4년을 들여다보니 이건 시스템이고 뭐고 없이 대통령의 40년 친구라는 한 자격 없는 사인(私人)이 나랏일을 주물렀던 게 아니었던가. 공화주의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았던가. ‘친박’이니 ‘진박’이니 봉건시대를 방불케 하는 파당 싸움이 벌어졌던 게 아니었나. 화려한 정원의 장식 석물을 자빠트려 보니 그 속에 지렁이와 온갖 벌레가 꼬물거리는 것처럼. 이명박 시대는 또 어땠나. 양파껍질 같은 추문이 끝없이 벗겨졌던 터다. 나라 창고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었다고나 해야 할까. ‘부패’와 ‘부정’이라는 단어로도 모자랄 지경이었던 거다.

그랬으면, 흔한 말로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이 있었어야 마땅하다. 한국당호의 난파 드라마(?)는 극우 성향의 홍준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당권을 맡긴 데서 ‘화룡점정’에 이르렀다고 나는 생각한다. 늪에서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제 발로 계속 걸어 들어간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약발 떨어진 지 언젠데, 아직도 입만 열면 ‘종북 타령’ ‘주사파 타령’일까.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된 미국의 보수사상가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란 책은 보수의 가치를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둘째,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과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에 대한 애정. 셋째, 문명화된 사회에선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다는 믿음. 넷째,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신념. 다섯째, 추상적 설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려는 사람을 믿지 않고 법률과 규범을 신봉하는 것. 여섯째, 급격한 개혁보다는 신중한 개혁에 대한 선호. 그런데, 이 기준에 따르면 내가 보기엔 한국의 보수는 낙제점이다. 그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초월적 질서가 있는가. 다양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 법률과 규범을 신봉하는가. 신중해도 좋으니 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연배 지긋한 일부 국민을 막말을 동원해 선동하는 그들에겐 생각의 다름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법률과 규범을 진짜로 믿었다면 박근혜에게 빌붙어 ‘진박 감별사’니 뭐니 떠들고 다녔을까. 남북대화를 ‘위장평화쇼’라고 욕하는 그들이 멀쩡히 굴러가던 개성공단을 하루아침에 폐쇄한 것 말고 집권 9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었나.

나는 우리나라 정당의 이념 스펙트럼을 재는 잣대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터다. 서구 기준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중도보수, 기껏해야 리버럴 정당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당은 사실은 오른쪽으로 클릭을 몇 번 더한 곳에 있는 거다. 서구적 의미의 보수정당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는 극우에 가까운데 자기네는 보수라고 착각하니 철 지난 극우적 냉전 논리를 읊으면서도 그게 오류라는 것도 모르는 거다. 이 첨단 디지털시대에 SNS로 무장한 국민의 의식은 무섭게 바뀌는데도 1950년대, 60년대의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 해동될 생각도 않는 거다. 그럼 그 결과는? 경멸과 비웃음밖에 돌아올 게 없다.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사회의 질서를 바라보는 방법’이라는 게 러셀 커크의 생각이다. 그는 “보수주의가 인류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전통의 계승이자 ‘영원한 것들’을 지키려는 노력이며, 사회의 발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고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주석을 붙인다면, 결국 보수주의는 진화하려는 노력이란 게 아니겠는가.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아닌가. 한국당은 과연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한국의 진보에도 문제가 없진 않다. 나는 그들도 북한 인권문제나, 미래를 위한 성장 동력의 확보 같은 ‘보수의 의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 역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진화해야 할 그 어떤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보수의 몰락은 보기에 처참할 정도다. 냉전시대의 반공주의, 친재벌, 성조기를 들고 설치는 일부 보수기독교단의 사대주의 등등이 뒤범벅된 게 한국 보수의 자화상이 아닌가.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에 악담하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봐 신경 쓰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국회를 외면하고선 돌출한 한 젊은이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고 목에 깁스를 한 채 단식이나 하다간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확률이 높다. 그러고도 계속 반성하지 않는다면 2년 후 총선에선 괴멸 직전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괴멸이냐, 회생이냐 그 분기점이 올해가 될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앞둔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그들이 어떤 자세를 보일 건가가 국민의 중요한 판단 준거가 될 거다.

그런데 고민은 자유한국당의 괴멸이 자칫 보수의 괴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수구·극우세력과 단호히 결별하고 대안적 보수담론을 재구성해 낼 능력을 갖춘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날 수 있느냐에 한국 보수의 사활이 걸려 있지 않을까. 법과 질서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냉전의식을 떨치고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대안적 시야를 가진 세력,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제 시스템의 청사진을 보일 세력, 신중한 개혁을 주창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보일 집단이 과연 나올 것인가. 안철수와 유승민을 얼굴로 내세운 바른미래당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솔직히 미덥지 않다.

하지만 진통이 따르더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반성하는 자세를 가진 새로운 보수 세력이 부상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경구는 상투적일지라도 틀린 말이 아니다. 건강한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선의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서로의 진화를 견인하는 사회가 아니겠나.

   
한국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는 보수가 정신 차리기를 바란다. 계속 늪으로 빠져들 건지, 아니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건지 그건 그들의 몫이다. 보수에 인간의 얼굴을 덧입혀라. 그게 그대들의 당면과제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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