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로 널리 애창된 ‘황성옛터’는 북한 개성의 고려 궁궐터 ‘만월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1927년 이곳을 찾은 작곡가 전수린이 고려 왕조의 폐허에 대한 감상과 망국의 설움을 오선지에 담아낸 것이다. 이 노래는 애잔한 곡조와 가사로 금세 히트 쳤다. 여가수 이애리수가 처음 불렀을 때 극장 안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놀란 일제는 민족감정을 선동한다며 금지가요 1호로 묶었다. 나라 잃은 민족의 한을 표현한 조선의 세레나데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왔다.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만월대(滿月臺)는 문헌상 고려 궁궐 정전(正殿) 앞의 계단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궁궐터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궁궐은 고려 태조 2년(919년)에 지어진 이래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런 만월대 유적지에 대한 조사는 2005년 남북 합의와 2007년 첫 공동 발굴로 급물살을 탔다. 첫해 조사에서만 건물지 5동과 유물 2000여 점을 찾아냈다.

남측 학자들은 이후에도 5차례 더 방문해 공동 조사를 이어갔다. 마지막 2015년에는 건물지 19동과 유물 3500여 점을 출토했는데, 성인 손톱 크기의 고려금속활자도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만월대를 비롯한 ‘개성 역사유적지구’가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도 그 같은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 지구는 개성성벽 5개 구역과 첨성대,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공민왕릉 등 고려 유적의 보고(寶庫)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만월대 공동 조사가 3년 만에 재개될 조짐이다. 한반도 해빙 무드를 볼 때 가능성이 높다. 언어통일을 위한 ‘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사업’도 마찬가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인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하는 ‘대고려전’에 북한 유물이 오는 것도 기대해 볼 만하다.

남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나,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무작정 서두르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공유의 역사를 규명해 나가는 것이 순리다. 그 점에서 문화·예술·체육 등 다방 면의 교류 협력이 중요하다. 만월대 공동 발굴사업의 재개가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황성옛터의 노래가락이 절로 떠오른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