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 보면 여성 연예인들의 화장 전후 모습을 한데 모은 글들을 자주 접한다. 이른바 ‘연예인 민낯 비교’다. 어떤 매체나 호사가들은 종종 ‘생얼(민낯)의 진정한 종결자는 누구?’라는 식의 자극적 표현을 쓰면서 읽는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하도 포장이 그럴싸하다 보니 여지없이 ‘낚시글’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당 글을 검색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사자 처지에서는 이런 류의 글이 대부분 달갑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별로 득이 될 게 없는 데다 자칫 악성 댓글이라도 퍼지면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서다. 반면 일부 기획사들은 대중 노출 빈도가 줄어든 소속 연예인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이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니 ‘노이즈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민낯 비교야 한 번 씩 웃고 지나치면 그만이다. 누구나 화장 전후 모습이 같을 수는 없을 테고 또 다르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정작 사람의 민낯이 추악하게 느껴지는 건 짙은 화장이 없어진 얼굴을 볼 때가 아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군상들의 모습을 갑작스럽게 접할 때다. 이럴 때는 연예인 민낯 비교처럼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받아넘기기가 힘들다. 그동안 특정 개인에게 가졌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단순한 실망 이상의 좌절감을 안겨준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전직 대통령이자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했다는 한 인물의 몰락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대통령 재직 때도 이런저런 구설이 있었으나 권력자에게 늘 따라다니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각종 비리를 조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편으로 몇몇 비리는 있을지언정 설마 그렇게까지 심하게 했을까라는 막연한 의구심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검찰이 제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어마어마하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민간부문 뇌물수수, 다스 실소유 의혹 및 경영비리, 차명재산 은닉, 삼성전자에 다스 소송비용 대납 요구, 대통령 재직 때 허위재산 신고,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동안 줄기차게 내세웠던 현 정권의 치졸한 정치보복이라던 주장이 무색해진다.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게 여겨졌을 정도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야간상고를 나온 이 전 대통령은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국회의원을 거쳐 국가 최고 지도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배를 불린 혐의로 옥중에서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정치인 이명박은 싫어하더라도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 하나만큼은 최소한 인정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뒤통수에 느닷없이 칼이 꽂힌 셈이 됐다.

국민의 분노 수위를 더 끌어올리는 것은 뇌물을 챙긴 방법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공익재단 모금 형태를 취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권력을 이용해 ‘직접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니 다 같이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됐지만 박 전 대통령 비리는 이 전 대통령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사회는 자고 일어나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황당한 꼴을 많이 당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50대 충남 도지사는 하루아침에 성폭행 혐의로 피해자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초라한 처지에 몰렸다. 한국 연극계를 좌지우지하던 한 인사는 20년 가까이 여성단원 10여 명 이상을 성추행했다가 구속됐다. 여기에다 유명 연예인과 대학교수, 종교인, 예술인들도 줄줄이 추악한 행실이 밝혀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저지른 죄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면 제대로 반성이나 했으면 그나마 낫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다. 안희정 전 도지사는 “위력이 아니라 합의 아래 관계를 가졌다”는 주장 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떻게든 형량을 낮춰보려는 그의 모습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던 예전의 기세등등함은 찾아 보기 힘들다. 유능하고 젊은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했던 지지자들의 망연자실한 심정을 그가 헤아리기나 할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지만 거의 이상론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겉모습 뒤에 숨은 맨얼굴이 깨끗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터다. 그래도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겉과 속이 한결같으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 여전히 존재할 거라 확신하면서 산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표리부동한 인사들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마지않는다. 그들의 볼썽사나운 민낯을 대하면 이제 지겨움을 넘어 진저리가 난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