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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유투(YouToo)의 권력’이 잃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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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3-22 19:40:0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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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가 분명히 있지. 내게 몸을 맡기지 않은 죄! 권력에 빌붙지 않은 죄!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은 죄!”
   
2000년대 초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대사다. ‘대장금’은 ‘요리의 과정’과 ‘권력의 개입’이라는 두 줄기로 엮어 가는 이야기이다. 창조적 생명력으로 요리의 과정을 지키려는 자와 억압적 권력으로 그 과정에 개입해서 손상을 입히려는 자 사이의 투쟁이 주된 줄거리다.

궁궐 안 수라간의 최 상궁은 조카 금영과 함께 정치적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요리의 과정’을 또한 자신들 고유의 권력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주인공 장금과 한 상궁은 인간의 목숨과 밀접한 음식 요리의 과정을 순수하게 지키려다 탄압받는 사람들이다. 최 상궁의 음모에 장금과 함께 옥에 갇힌 한 상궁은 자신이 무슨 죄가 있냐고 절규한다. 최 상궁은 앞에서 언급한 대사로 싸늘하게 답한다. 한 상궁은 권력에 몸을 맡기지 않아 그 자체로 중죄인이 된 것이다.

대장금의 이야기는, 언뜻 동떨어진 것 같지만, 오늘 우리나라에서 들춰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의 배경을 조명할 수 있는 거울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드러난 성폭력 사건들은 거의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남용 또는 적극 활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 하면 정치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정치적 권력은 인간 삶의 세세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다. 특히 권력이 정치적 차원에서 성적 수탈의 차원으로 침투해간 경우는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권력에 수청 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청 들다’라는 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아도 알 수 있다. 수청(守廳)이란 원래 높은 벼슬아치 밑에 있으면서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일종의 비서 업무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관기(官妓)가 생기고 그들이 지방 관아에도 딸려 지방관들의 위락의 대상이 되면서 관기들이 지방관에게 성을 상납한다는 의미로 ‘수청 든다’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의 유래가 최근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장의 사건과 자꾸 겹쳐지는 게 몹시 괴롭다.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쳐 걸러지고 사라졌어야 할 나쁜 관습들이 망령처럼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공적인 것이다. 당연히 의무와 책임을 수반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항상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권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찾기 시작하면, 권력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왜곡된 길에 쉽게 들어선다. 권력은 두루 강한 것 같지만 흑심의 유혹에는 아주 취약하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경고성 금언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 말은 언뜻 왕 또는 황제와 같이 국가의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도 권력을 절대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계질서가 고착된 관청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왕처럼 군림했던 극단의 장이 단원에게, 제자를 자신의 수하로 여겼던 선생이 학생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행사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지속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권력은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은 괴물이 되어 쉽게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폭력이 된다.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인격의 척도이다. 바꿔 말하면 인격 도야란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것의 본디 역할을 잘 수행하는 길인 것이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직무수행 능력이 분리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제 보니 영국 작가 제임스 보스웰이 한 말은 과언이 아닌 듯싶다. “성교의 쾌감과 종족의 번식력이 미덕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면 세상은 매우 좋아질 것이다.”

지금 ‘미투(#MeToo) 운동’은 피해자에 집중된 시선을 거두고 폭력의 구조 해체를 외치고 있다. 피해자가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투, ‘나도 당했다’라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유투(YouToo), ‘너도 휘둘렀구나’를 폭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권력과 성폭력의 연관성이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데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점은 성폭력을 자행하는 권력자들이 특히 잊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성관계는 고귀한 것이며 아름답고 성(聖)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생명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성행위는 생명력의 표현이다. 생명력은 모든 긍정성의 발로이다. 반면 권력은 뭔가 실행할 수 있는 힘이지만 항상 부정적인 이면을 지니고 있다. 생명력과 권력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생명력은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얕잡아 부르는 다른 동물들도 상대에게 청하고 동의를 얻어 성행위를 한다. 곧 구애를 한다. 동물들의 구애 행위가 애틋하고 감동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폭력적으로 성적 관계를 강요하는 권력자는 구애도 연애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의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곧 그들은 사랑도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권력에 생명력이 담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성적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전혀 섹시하지도 않은 자와 어떻게 성관계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것이지만, 부패한 권력자의 특징은 성실하고 진솔한 구애의 노력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냥 밀어붙이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행을 위한 고려 사항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철저히 무시하는 데 습관 들면 생명력과 인격이 사라진다. 권력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무능하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유투의 권력’은 이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과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자기 성찰과 함께 유투의 권력 구조를 깨고 개선한다면, 성폭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생명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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