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남다른 생애의 파노라마를 음미해 보기에 생가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경남 의령 세간리 곽재우 생가는 규모가 있어 그의 든든했던 집안 내력을 느끼게 한다. 생가 입구의 500년 된 은행나무나 마을 가장자리의 600년 된 느티나무 ‘현고수’는 그의 인간적 풍모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곽재우의 행보는 당시 사대부들과 다르다. 유가의 경전 외에 ‘백가서’, 특히 ‘병가서’나 ‘노장학’도 마다하지 않았고 활쏘기와 말타기도 익혔다. 문무 겸비의 소양에, 소란한 세속을 떠날 준비까지 한다. 경계와 구획을 설정하지 않고 자기 확충의 길을 걷는다. 영달에서 자유롭고 행보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성리학이 절정에 달하고 불가와 도가가 이단으로 배척받던 시기에 성리학에 매몰된 부류가 그어 놓은 경계와 구획을 관통한다.
문무 겸비는 왕조 초기의 일반적인 추세다. 고려의 최충, 강감찬, 윤관에서 조선의 정도전, 김종서, 최윤덕에서 보듯이. 태평시절이 지속되면 문무 사이에 경계와 구획이 생긴다. 문이 무를 떠나면 문덕(文德)은 문약(文弱)이 되고, 무가 문을 떠나면 무위(武威)는 무폭(武暴)이 된다. 중앙과 변방이 분리되어 국가가 위태로워지고, 조정과 백성이 분리되어 민생이 도탄에 빠진다. 고려의 무신정권과 원의 지배, 조선의 임란과 병란 및 그 후의 식민 지배에서 보듯이. 곽재우의 문인으로서의 면모는 영남 사림파의 주류인 김종직 김굉필의 학통이 가학이 된 것으로, 퇴계와 남명의 영남학파 중 남명학파에 속하게 된 것으로 드러난다. 또 왕의 뜻에 거슬려 발표 며칠 만에 파방된 별시 정시에 2등으로 뽑힌 과거 응시로, ‘중흥삼책소’ ‘진시폐소’ 등 조정 폐단의 일소와 국가 중흥의 계책을 진달하는 상소로, 27제 36수의 남긴 시로도 나타난다.
무인으로서의 면모는 임란 때 의병활동에서의 전략 전술과 그 후 국방대책에서의 성지 수축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1592년 ‘정암진 전투’의 유격전,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의 참가 거부, 1594년 수륙 연합의 ‘거제의 역(役)’에의 부득이한 참여는 수많은 장졸을 거느린 장수가 어떤 전략 전술로 전투에 임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진주가 패할 때 곽재우의 건의를 실행했더라면 진주가 보전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강 정구가 말한 것, 호서 주둔 명의 양원 부대를 영남지방으로 이동시켜 총력전을 펴려던 체찰사 이원익의 통지를 받자 좋지 않은 작전임을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장수가 있을진대 국가에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라고 이원익이 감탄한 것은 그의 장수로서의 수준을 짐작게 한다.
왜적이 조총과 장검과 돌진이라는 장기 셋을 가진 데 비해 활에만 의지해야 하는 아군의 처지를 곽재우가 ‘화약은 반드시 떨어지게 마련이고, 장검은 두어 걸음 앞에서 맞붙어야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굳센 활은 두어 걸음을 기다려 쏠 필요가 없다’고 뒤집어 말한 것은 무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특장인 약점을 강점으로 일거에 전환시키는 기병(奇兵)의 운용에 탁월함을 보인 그의 용병술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소규모의 기병을 운용하던 시절을 지나 수천 명의 장졸을 거느린 정병(正兵)의 장수로서 수성전에 대비하여 산성을 수축하면서는 관할지의 성을 두루 순시하며 확인하고 백성들을 동원하는 데 따르는 원성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성지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배후지를 설정하는 등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이는 승산 있는 전투를 하기 위한 대비와 다른 장수들조차 모르는 전략적 복안을 물 흐르듯이 구사하는 병서에서 ‘신의 경지’라 일컬은 것, 수군의 이순신과 마찬가지의 경지에 그가 이른 것임을 보여준다. 선조와 광해군 때 수십 차례의 부름을 받지만 때로는 거절하고 잠시 자리에 머물기도 하지만 만년에는 최치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면서 도가적 양생의 길로 들어선다. ‘대의’를 실현할 수 없는 자리, ‘사리사욕’에 눈먼 붕당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문인으로서는 무의 속성이 스며들어 글에 수사적 언술이 적고 단호하며 직선적이듯이 무인으로서는 문의 속성이 스며들어 전략과 전술에 주도면밀하고 철저하다. 차고 넘쳐 가능한 경지다. 마찬가지로 양생도 단순한 명철보신의 방편이 아니라 문무의 길을 넘어선 명징한 도달점이었다. ‘양생의 좌우명’ ‘조식(調息)의 지침’이라는 시나, 그의 찬술서 ‘양심요결’(養心要訣)이 정렴의 ‘단가요결’, 이지함의 ‘복기문답’ 등과 함께 조선 단학파의 양생술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좁은 경계나 구획의 안쪽에 스스로 갇혀서 자기 바깥을 향해 비난과 왜곡의 막말을 쏟아내며 목전의 이해득실에 연연하는 우리의 현실은 곽재우와 같은 인물을 불러오게 한다.
도보여행가·문학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