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운산업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해운산업은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Ship-in)하고 생산된 제품을 수출(Ship-out)해야 하는 무역의존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 경제 생산활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해운산업 규모의 발전은 후방산업인 조선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 아직은 국가 선대규모가 크지 않아서 국내 해운산업이 국내 조선에 대한 발주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이웃한 일본의 경우 일본 해운기업의 발주량이 일본 조선소 수주량의 8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조선업의 내수 창출을 위해서 해운산업의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적선 적취율 제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내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해상 물동량을 우리 선박에 싣는 국적선 적취율을 높여야, 고착화되어 가는 과잉선복 시장구조 하에서 전략적인 안정 기반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물동량을 가진 국내 화주와의 상생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화주가 지불하는 운임은 해운기업 수익과 외부차입금 상환의 원천이 됨과 동시에 선대 투자를 위한 종잣돈이 된다. 내수경기 활성화,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소중한 운임의 대부분이 해외 해운기업에게 지급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심각한 국부의 유출일 뿐만 아니라 해운산업 강화를 통한 해양강국으로의 도약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관 산업효과나 국익차원에서 당연할 것 같은 국내 화주의 상생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에는 저간의 사정이 없지는 않다. 특히 2005년 이후 단기 용선시장 운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던 시기, 국내 대량화주가 장기 용선계약을 맺고자 해도 단기 현물시장에서의 높은 운임의 유혹에 빠진 우리 해운기업들이 장기계약을 거부하는 경우가 생겼고, 그로 말미암아 선·하주 간 상생구조가 흔들리고 화주들이 우리 해운기업과의 장기용선계약 비중을 낮추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장기 용선계약이 없는 컨테이너선박의 경우에는 선·하주 간의 협력적인 신뢰 관계가 시장 상황의 반복적인 부침에 따라 약화되어 왔고 특히 한진해운 부실화로 컨테이너화물 수송 혼란을 겪으면서 해운기업에 대한 대내외적인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해운기업의 훼손된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과다한 외부 차입 의존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해운기업은 BDI(Baltic Dry Index)로 대변되는 운임지수 변동은 물론 많은 외생 변수의 변동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유가, 환율, 이자율, 관련기업의 신용상태 변화, 사고·천재지변 등 매 순간 변동하는 시장 이슈 및 뉴스를 평소 모니터링해 상황 발생 시 미리 준비된 플랜에 따라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해운산업은 전통적으로 외부차입금 의존도가 다른 산업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2016년 말 통계에 의하면 국내 105개 산업의 평균 차입금 의존도가 28% 수준인 반면 해운업은 64% 수준으로 배를 훌쩍 넘어 선다. 외부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나눈 부채비율 역시 산업 평균이 120% 수준인 반면 해운업은 250%에 달해 다른 산업의 배를 넘고 있다. 특히 부채 비율에는 대부분 해운기업이 가지고 있는 장기 용선에 대한 용선료 지급 의무가 빠져 있기 때문에 실제 해운기업이 부담하는 외부 차입 상환 의무는 겉으로 드러난 부채비율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박 금융의 경우 해운기업의 자기자금 부담을 제외한 LTV(Loan to value, 선가 대비 차입비율)가 통상 60~70% 내외가 적정한 수준이지만 최근 국내 선박금융시장에서는 후순위펀드 등을 통해 선가의 90% 수준까지 차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충분한 운임이 보장된 장기 용선계약이 있는 경우는 별개지만 그러한 계약 없이 LTV 차입비율이 높을 경우 차입 금리가 높아짐은 물론 과다한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시장 운임이 조금만 하락해도 해당 선박의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어 해당 사업은 물론 해운기업도 커다란 유동성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거액의 자본이 필요한 해운업의 경우 일부 외부차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가 생명인 해운업의 경우 실추된 대외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선대 확장이나 선대 경쟁력 제고 이상으로 부채 비율 및 대외 차입의존을 낮추는 노력을 통해 신뢰라는 기업자산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거시경제 변수와 해운시장의 변동성 증가는 과중한 외부 차입에 의한 해운업 경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해운기업이 싫든 좋든 간에 해운기업을 둘러싼 많은 이해관계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채비율과 외부차입금 의존도를 해당 기업의 대외 신뢰도 측정의 첫 번째 가늠자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금융종합센터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