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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코리아패싱’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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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통일부 정책토의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로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고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 직접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두고 보수세력은 북핵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안이하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른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비판하며 “코리아 패싱” “조수석에도 못 앉을 처지”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한국 건너뛰기쯤으로 번역된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 한국을 제외하고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논의한다는 의미다. 1998년 일본에서 나온 ‘재팬 패싱’이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일본을 건너뛴 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이후 일본을 경시한 외교행보를 빗댄 용어로 탄생했다는 것.

사실 코리아 패싱은 어법상 맞지 않고, 그러니 외교 용어에도 없는 말이다. 영어 관용어 중에는 ‘스키핑 코리아(Skipping Korea)’가 어법이나 의미상 적합하다. 짐작건대 일본식 영어 조어인 재팬 패싱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며 코리아 패싱으로 정착된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정가에서 코리아 패싱이란 용어가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건 박근혜 정부 말기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 정부의 외교적 무능함을 비판하며 이 말을 사용한 것.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본격 확산의 일등공신은 보수세력이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도 그저 평화만을 외치는 문 정부 비판에 코리아 패싱은 단골 소재였다. 어법이 엉터리든 말든, 금과옥조 같은 한미동맹을 무시한 결과라는 비아냥도 담겼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성사시키면서다. 당장 일본과 중국 내부에서 ‘재팬 패싱’이니 ‘차이나 패싱’이니 하는 우려가 나온다. 자기네 나라를 쏙 뺀 채 한미 간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양국 정상들은 바쁜 국내 일정도 미룬 채 우리 특사를 만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정책토의 자리에서 이런 말도 했다. “엄동설한에도 봄은 반드시 오는 것이므로 봄이 왔을 때 씨를 잘 뿌릴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해 달라.” 진정한 봄은 아직 멀었겠지만 온갖 조롱을 견디며 대반전을 이룬 외교력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장재건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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