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제호만큼 큰 글씨로 1면을 차지한 글씨는 몹시 선동적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겐 심지어 선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뀌즈(J’accuse…!), 우리말로 ‘나는 …을 고발한다!’인 제목은 그랬다.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신문 ‘새벽’의 편집장 조르주 클레망소는 에밀 졸라가 대통령에게 띄운 공개서한이 실린 신문을 발행했다. 정중하다 못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제목을 바꾸자며 졸라를 조른 이가 바로 그이다. 대중은 능수능란한 정치가이자 언론인이 부여한 말줄임표에 호기심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읽었다.
그때는 글을 예의로 대한 마지막 시대였나 보다. 내 생각과 같거나 다르거나, 일단 시작한 글은 마지막까지 읽어주는 예의. 클레망소의 제안 덕분일까, 해묵은 논란이 다시 달아오른다. 유명한 졸라가 공개서한을 쓰기로 결심한 동기는 무엇보다 드레퓌스 사건이 촉발시킨 것이다. 유대계 포병 대위 드레퓌스는 독일 간첩으로 몰려 종신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종신형이 웬 말이냐, 죽여 버리라는 고함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유무죄를 차치하고 재심 기회를 줄까 말까, 기본과 원칙조차 논란을 거듭하는 프랑스 사회의 반유대주의 분위기, 게다가 그것을 용인한 국가에 졸라는 도전했다.
졸라는 사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는 대세에 도전했고 온갖 터무니없는 비난도 무릅쓰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은 ‘역사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는 신념에서 나왔을 것이다. 용기에 대한 보답이 아쉽게도 명예훼손 유죄 판결과 영국 망명 같은 고행이었지만 말이다.
꼭 120년이 흐른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일, 반유대주의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게걸음질 치는 중이다. 클레망소나 졸라의 시대처럼 죽여 버리라는 고함은 없고 슬슬 눈치껏 피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번지르르한 위선과 헛된 명분의 물결은 도도하게 잠류한다. 개는 짖어라, 기차는 달린다는 막말을 뇌까리고도 멀쩡한 옛적 개그맨 지망생은 어쩌면 오늘날 사태의 예언자였는지 모른다. 임계점에 도달한 폭력의 일방성이 폭로되는 시절에 우리는 누구 편에 설 것인가. 눈은 가렸어도 뚫린 귀를 가진 정의의 여신은 반응이 굼뜨다.
이만한 사건이라면 목소리를 높임 직한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잠자코 이렇게 조용한 것인가. 지금은 고발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고백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침묵했던 이들에게 고발하라고, 그리고 또 다른 침묵에도 고백하라고 주문하련다. 고백 없는 침묵은 로마법에 따라 공범임을 시인하는 증명이거나, 아니면 침묵의 카르텔은 굳건할 것이라 믿고 그저 소나기 피하듯 잠시 미뤄보려는 심사가 아닐까. 관습의 이름에 구차한 머리를 처박고 벌거숭이 몸통은 다 드러난 꼴불견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저 너무 익숙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줄로만 알았다고, 사정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짐짓 놀란 위선의 얼굴은 변명할 것이다. 이런 위선, 모르쇠를 놓거나 시치미를 떼는 태도는 ‘나를 어물전에서 찾는 것이 빠르겠소!’라고 장자에게 버럭 화를 낸 붕어의 역정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단언컨대, 이것은 훗날 회고하거나 기억할 대상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고발은 태생부터 법률 용어이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만한 일상의 필부에게 고발은 내게서 비롯하든 남이 덧씌우든 입 밖에 내기 꺼려지는 말이다. 고발이라는 낱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카테고레오(kategoreo)를 만나게 된다. 카테고레오는 흔히 ‘범주’라고 옮기는 철학 용어 카테고리아(kategoria)의 어원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당시 유행하던 소피스트에 대항했다. 하지만 병법에서 흔히 그러하듯, 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기도 하다. 법률가인 소피스트가 법정에서 매일 반복하는 행위, 그들의 무수한 고소와 고발을 통해 배운 대로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물론 플라톤의 법정이 소피스트의 법정은 아니었다. 플라톤에게 고발은 그래서 법정의 고발이 아니라 인간이 타고난 일반적 능력인 판단과 그 표현인 단언으로 탈바꿈한다.
고발을 가리키는 말의 갈래에서 고발이 적어도 인간 사회의 본질에 맞닿은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상상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아쿠소 에르고 숨, ‘나는 고발하기 때문에 존재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아쿠소(accuso), 라틴어로 나는 고발한다는 말, 동시에 나는 단언한다거나 나는 판단한다는 말. 이제 다시 주문하고 싶다. 아쿠소 에르고 숨, ‘나는 고발하고, 판단하고, 결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존재 증명의 시간이다. 로도스의 거짓말쟁이에게 돌려준 말처럼 ‘자, 여기서 지금 스스로 고백해 보시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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