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찾았던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오찬 건배사를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하여’라고 했다. 이때 김여정은 “이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백두혈통’으로는 첫 청와대 방문에서 남북 정상회담 제의가 이뤄진 것이다.

이날 오찬에 앞서 문 대통령은 김여정,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본관 1층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배경판이 의미심장했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 ‘通’과 이철수 판화가의 한반도 작품이었다. ‘統이 완성이라면 通은 과정입니다. 막다른 데서 길을 찾고 길 없는 데서 길을 낼 결심이 분단 극복과 통일로 가는 길에서는 더욱 절실합니다. (…) 通은 統입니다. 通으로 統을 이루게 되기를’이라는 해설은 문 대통령의 건배사를 풀어놓은 듯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즉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주역’ 구절을 빗대 남북 관계의 활로를 찾고자 하는 바람으로 읽힌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를 지나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하루 앞둔 그제 평양에서 남북이 다시 마주 앉았다. 김정은 위원장과 화사한 옷차림의 부인 리설주가 등장한 만찬 장면을 제치고 어제 전국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사진은 평양 고방산초대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북 대표단 모습이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 특사로 하는 대북 특사단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북측 고위급 인사들이 방북 일정 등을 협의하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긴장감이 흐르는 테이블 중앙 유난히 두드러지는 보라색 꽃을 보며 떠오른 건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인 2월 16일과 김일성 주석 생일이자 태양절인 4월 15일 김정일화 축전과 김일성화 축전이 열린다는 건 주지의 사실. 김일성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 주석이 수카르노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일종의 서양란. 김정일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베고니아의 한 품종으로 1988년 김 위원장 46세 생일 때 일본 식물학자가 선물했다.

이보다 남북이 모두 좋아하는 꽃은 진달래 아닐까 싶다. 북한에선 불타는 조국애의 상징이고, 우리나라에선 봄의 전령이다. 남북관계의 해빙을 알리기엔 안성맞춤이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