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북 초청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친서와 구두 메시지를 받았다. 김여정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특사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2000년, 2007년에 이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쟁 위기설까지 나돌던 지난해 분위기를 생각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태도는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명의의 김 위원장 친서와 ‘여동생 특사’가 그 예다. 올해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자’고 강조했던 김 위원장이다. 그 배경은 평창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지난 8일 진행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와 ‘화성-15’로 대표되는 핵전력이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층 심화한 외교적 경제적 고립 상태를 해결하고, 한미 동맹의 균열을 꾀하자는 의도가 읽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여건’을 들어 ‘조건부 수락’이라는 태도를 보인 것은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입장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도 김여정 일행에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필요하다”며 북미 대화를 강조했다.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을 북미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미국이다.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리셉션장에서 북한 측과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겐 핵 드라이브로는 한반도에 평화를 뿌리내릴 수 없음을, 미국엔 북미대화가 남북 관계 개선 및 북핵 해결의 밑거름이 됨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에선 손에 쥘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하겠다. 필요하다면 평양과 워싱턴으로 특사를 보내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그 시기는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후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시작되기 이전이 좋을 듯하다. 문 대통령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