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점화될 성화는 두 개다. 하나는 올림픽 스타디움의 불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의 마음에 타오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열망이다. 마음의 성화는 “북한 핵 개발로 불거진 전쟁 위기를 잠재울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호기가 평창올림픽”이라고 웅변한다. 그 외침은 유엔 결의로 마련된 두 달 남짓한 ‘올림픽 휴전’을 영구평화로 가는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을 일깨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남한 방문은 그 목표 달성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김 부부장은 북한 최고권력 가문인 ‘백두혈통’이자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다. 그런 그를 헌법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함께 평창올림픽에 파견한 것은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되면 배석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그가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청와대는 김 부부장이 친서를 전달할 경우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친서 내용에 따라선 북한에 우리가 특사를 보내 친서에 대한 입장을 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를 제도화해 남북관계를 반전시킬 천금 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북한과 미국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북한의 올림픽 미소 외교는 한미일 3국 공조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라며 “곧 북한에 대한 전례 없이 엄중하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영삼 북한 외무성 국장도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면서 “올림픽 기간이나 그 이후에도 미국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북미가 평창에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신경전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만은 없을 것 같다. 혹시 성사될지도 모르는 북미대화를 염두에 둔 주도권 싸움일 수도 있다는 까닭에서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한과 2·3개의 대화 채널을 갖고 있다”고 밝힌 적 있으며, 지난해 12월 북미가 중국 베이징에서 반관반민 형식의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북한 정부가 김 부부장을 남한에 보낸 건 대북 제재로 심화하는 경제난을 타개할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미국과의 대화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미국 역시 지난달 13일 하와이에서 북한 핵미사일 대피 소동을 벌이는 등 임박한 북핵 완성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터라 북한과의 대화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북미의 이런 미묘한 입장을 간파해 대화 테이블로 이끄는 중재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이번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올림픽 후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면 북미는 종전의 극한대립 상태로 돌아갈 게 뻔하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골든타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