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원론부터 말해보자. 인문학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문은 ‘1. 인류의 문화, 2. 인물과 문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인륜의 질서’로 나와 있다. 이 말로 인문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사전에 나오는 풀이로 볼 때 ‘인류의 문화’ 정도가 넓은 범주의 인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의 정의가 워낙 넓기 때문에 인문학이라는 말에도 온갖 말이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의 글자에서 인(人)은 사람을 뜻한다. 문(文)은 무늬라는 말인데, 옛 글자는 원래 상형문자 문(攵)이다. 이 글자는 문(
)으로도 쓰인다. 사람의 몸에 심(心) 꼴의 문신을 새긴다는 뜻이다. 세상 만물이 모두 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만 몸에 무늬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몸에 문신을 새긴다는 뜻이다. 원시 부족이 문신을 새기는 것은 자신을 상징하는 형상을 무늬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문(文)은 무늬를 뜻하는 의미에서 문자를 뜻하는 의미로, 문자라는 개념에서 학문이라는 개념으로, 최근에는 문화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변화되어 왔다. 동물은 자신의 가죽으로 무늬를 남기며 나무는 나이테라는 무늬를 남기지만, 사람은 인문이라는 영혼의 무늬로 자신을 남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가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몸에 새기던 무늬는 도상(圖像)이라는 상형문자로 표현됐다. 인문은 문자라는 상징 체계의 발견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문자의 발견은 몸에 새기던 문신에서 영혼을 새기는 무늬로 나아가는 첫 번째 지점이다. 창힐(蒼頡)이 새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그 모양을 발견하면서 사물의 형상을 본뜬 문자를 만들었다. 그보다 더 앞선 시대에 황하에 사는 용이 도(圖)를 바치니 그 속에 팔괘가 숨겨져 있었으며, 낙수에 사는 거북이가 서(書)를 바치니 그 속에 구주가 감추어져 있었다.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문자의 어원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도서관은 사람의 영혼이 새겨진 각종 무늬가 있는 공간이다. 그 영혼의 무늬는 각기 다른 상징으로 존재한다. 사람은 피부색이 다른 각각의 무늬로 세상을 살아가고, 평생을 살면서 영혼의 무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 무늬가 때론 거대한 무덤으로, 때론 위대한 저작물로, 때론 영혼을 울리는 말씀으로 남겨지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이 살았던 인문의 흔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들이 남긴 인문의 무늬는 어떤 화려한 자연의 무늬보다도 아름답다. 도서관은 그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가 모여 있는 영혼의 곳간이다. 사람의 무늬는 겉치레로 꾸미는 화려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새긴 무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무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쌓아온 삶의 의미들로 채워져 있다. 도서관은 평생 동안 쌓아온 노년의 영혼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평생 수레바퀴를 깎은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 윤편(輪扁)의 이야기와 요리의 비법으로 재상에 올랐던 이윤(伊尹)의 이야기는 모두 한 사람의 평생이 남긴 무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문자로 자신의 말과 생각을 모두 전할 수는 없겠지만, 글과 책은 사람들이 남긴 고귀한 영혼의 무늬임에 틀림이 없다. 인문학의 출발은 인류가 남긴 각각의 무늬를 발견하는 데 있다. 그 인문학이 있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인류가 남긴 빛나는 영혼들이 모인 장소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영혼을 새기는 학문이다. 호랑이는 화려한 빛깔의 무늬를 가지고 살고 그 무늬를 남긴다. 거북이는 딱딱한 갑옷을 평생 동안 짊어지고 살고 죽어서는 그 무늬를 남긴다. 그러나 그 각각의 무늬들은 자신만의 무늬들이지 다른 동물이 흉내 낼 수 있는 무늬가 아니다. 인문(人文)은 사람이 남긴 무늬로 그 무늬는 어떤 것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영혼의 무늬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던지 그 사람은 평생의 무늬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 평생의 무늬를 새기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무늬를 남기는 학문이다. 물리학자든 수학자든 의학자든 어떤 배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영혼을 새기기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이 비록 다른 매체로 바뀌어가고 있을지라도 궁극에는 글쓰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글쓰기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간이 도서관이다. 인문학은 영혼의 무늬를 새긴 도서(圖書)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다. 새봄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서 사람들이 남겨놓은 영혼의 무늬를 만나보자. 그곳에서 인문학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인류가 남긴 책을 찾아 읽고, 자신의 영혼이 담긴 글을 쓰는 데서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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