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던가. 만물이 순환하니 기시감(旣視感)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기시감도 있다. ‘안전불감증 기시감’이다. 38명이 유독가스와 연기에 질식돼 숨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에서 드러난 안전불감증이 그러하다. 그건 초기 진화와 인명 보호에 필수적인 스프링클러(살수기)와 배연·제연 시설의 부재로 나타났다. 이들 시설은 2014년 5월 발생한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 때 이미 설치 필요성이 강조된 바 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자. “효사랑요양병원 사망자 21명의 대다수가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10명이 사망한 2010년 11월의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원 화재 사고와 판박이다. 인덕요양원 사고 후 건물 면적과 관계없이 노인·장애인 요양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등 화재 진압 설비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배연·제연 시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노약자들이 생활하는 곳인데도 연기 배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도 요양병원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효사랑요양병원 사고의 문제점을 분석한 기사다. 인덕요양원 사고 후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와 배연·제연 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더라면 효사랑요양병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점은 세종병원 사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덕요양원 사고로부터 무려 7년여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참사 발생 소지는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문제점을 또 지적할 수밖에 없다. 기막힌 현실이지만 실태가 개선되지 않았으니 어쩌랴. 교훈을 얻지 못한 과거는 반복된다는 게 인류 역사의 가르침 아닌가.

현행 다중이용시설 화재 예방 제도의 폐단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짚어봐야 하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독가스를 마시면 10~15초 만에 정신을 잃는다. 화재 사망자의 60% 이상이 질식사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화재 발생 때마다 들었던 말이다. 세종병원(5층) 같은 다층 건물은 불이 나면 유독가스와 연기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번져나가 피해를 키우고 진화를 어렵게 만든다는 건 상식이다. 이른바 ‘굴뚝 효과’라는 거다.

따라서 정상인보다 화재 대처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자가 이용하는 병원의 경우, 층고나 면적에 상관없이 배연·제연 시설을 설치토록 하는 게 당연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상은 6층 또는 바닥면적 1000㎡ 이상인 건물로 제한돼 있다. 바닥면적 224.69㎡인 세종병원은 170여 명의 환자가 입원하는데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스프링클러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시설은 4층 또는 바닥면적 1000㎡ 이상으로 설치 대상이 한정돼 있어 세종병원은 예외다. 사고 당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법규를 근거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말하던 세종병원 이사장의 모습은 불합리 그 자체였다. 38명이나 되는 귀중한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피해 예방시설 미비 책임에서 자유롭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나. 바로 정치권 아닌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사고 수습과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기는커녕 세종병원 참사 책임을 서로 전가하거나 당리당략에 활용하는 데 급급하다. 여당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남지사로 재직한 점을 들어 그에게 세종병원 참사 책임을 추궁하고, 야당은 한 달 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까지 소급해 정부와 여당의 무능을 질타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들에게 세종병원 참사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 ‘호재’쯤으로만 보이는 걸까.

이를 보다 못한 유족들이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밀양문화체육회관을 찾은 홍 대표가 “정부가 아마추어가 되다 보니까 예방 행정을 모른다”고 비판하자, 일부 유족이 “소방법을 반대한 사람이 여길 왜 오느냐”며 발끈했다. 지난해 소방·경찰·복지 공무원을 충원하려는 정부 정책을 한국당이 ‘포퓰리즘 추경’이라며 반대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앞서 화재 현장에 들렀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무능한 내각 총사퇴하라”며 날을 세우다, 시민들로부터 “불난 집에 정치하러 왔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남 탓할 게 아니다. 책임은 정치권 모두에 있다. 2010년 인덕요양원 참사 때도, 2014년 효사랑요양병원 참사 때도 관련 법 제·개정 권한은 그들이 쥐고 있었다. 이들 사고에 조금만 신경을 기울였더라면 원인 파악과 합리적인 대책 수립이 가능했다. 앞서 인용했듯이 당시 언론에도 문제점과 개선 과제가 거론되지 않았는가. 문제의 핵심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악화시킨 건 다름 아닌 정치권의 안전불감증이라는 진실 말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