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은 인생의 압축판이나 다름없다. 평생 갈고닦고 벼려온 가치와 소신이 오롯이 담긴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유품을 먼저 살펴보는 게 효과적이다.

1993년 입적한 성철 스님이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다. 그의 유품은 40여 년 수도생활 동안 직접 기워 입은 누더기 장삼 한 벌에 덧버선과 검정 고무신 한 켤레가 전부였다. 굳이 말로 일깨우지 않더라도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유품이다. “원래 참선이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야 하거늘, 수행하는 중놈이 시간 볼 때가 어디 있노.” 성철 스님은 살아생전 한 신도가 선물한 롤렉스 시계를 도끼로 내리쳐 박살내 버렸다. 제자들이 해준 비단옷과 비단이불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유품은 물건 세 점이 아니라 ‘청빈’의 가르침이었다.

인상 깊기로는 2010년 타계한 법정 스님의 유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유 관념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그는 틈만 나면 ‘무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했고, 사후에도 이를 실천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고 유언해 관철시킨 것이다. 그의 유품은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 스승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쓴 자연주의 문명비판서 ‘월든’ 한 권뿐이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 책에 대해 “월든 하나로 소로우는 우리가 미국에서 거둔 모든 것을 능가했다”고 평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산문에서 ‘월든’을 자주 언급했던 소로우 사상의 전파자였다. 우리나라에 ‘월든’이 널리 알려진 건 그의 노력이 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우리에게 미국 정신문명의 정수를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인이든 범인이든 유품의 의미는 다르지 않다. 부산 사상구 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유품이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지난 22일 자신이 세들어 살던 집주인에게 670만 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제몫까지 오래 사세요. 돈 놓고 가니 잘 쓰세요.” 이 돈은 지난 10년간 자신을 돌봐주고 말동무가 되어 준 유일한 친구였던 집주인에 대한 보은의 정표(情表)다. ‘고독사 도시’ 부산에 사례를 더한 그의 고독한 죽음에 가슴 먹먹하고, 마지막까지 은혜를 갚고 떠난 착한 마음씨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의 빈자리에 부는 칼바람이 매섭게 느껴진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