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차기 부산시장 여야 후보 경쟁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인사들이었다. 지난해 10월 초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던 두 사람은 장 총장이 같은 해 12월 26일, 이 전 수석이 지난 14일 각각 부산시장 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히면서 ‘없던 일’이 됐다. 불출마 선언 과정은 사실상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 국면을 개인적으로 십분 활용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전 수석은 서울의 한 기자를 만나 세 가지의 불출마 이유를 내세웠다. “정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 남고 싶고,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 출마할 생각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는 4개월간 ‘침묵’의 대가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3철’(양정철 이호철 전해철)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으로 인식된다. 동시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에 버금가는 부정적 이미지가 부여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전 수석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지난해 5·9대선 직후 외국으로 떠난 것도 이 같은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은 차기 부산시장 후보 물색 국면을 통해 언제든지 문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침묵으로 몸값을 키운 그가 서울의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잘 짜인 각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장 총장의 불출마 과정도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3개월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그가 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만난 게 지난해 12월 22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후보 선출과 관련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흘 뒤 돌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홍 대표와의 회동 전후 상황이 변한 게 없어 ‘뜬금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검증이 가시화되는 등 그에 대한 주목도가 이전과 비교할 때 훨씬 높아진 것은 달라진 점이었다.

부산의 한 중진 의원은 “장 총장은 애초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홍 대표가 부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사달이 나고, 망신을 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장 총장이 한국당 부산시장 후보 놀음으로 얻은 것은 이 전 수석 못지않다. 장 총장의 위상은 한때나마 지도자급으로 격상됐다. ‘동서대’가 얻은 부수 효과도 상당하다.

두 사람이 밝힌 불출마 입장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의도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됐음에도 ‘부산’ 얘기가 없다. 부산에 대한 최소한의 먹고사는 문제마저 고민하지 않았다고 보면 지나친 평가일까. 공적 의식 없이 정파적 혹은 개인적 손익에 따라 고민했고, 그렇게 움직인 결과 두 사람은 충분히 얻었다. 두 사람의 불출마 과정을 지켜본 기자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 편의 ‘연극’을 찍는 동안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은 차단됐다. 동시에 시민은 새로운 지도자감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것은 어쩌면 제2 도시 부산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연극이 끝나서. 그리고 한마디 더. 지금도 ‘판’이 벌어졌으니 ‘한몫 챙기고 보자’는 인사가 있다. 부산 시민이 우습게 보이나.

서울본부 정치부 부장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