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現)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의 정치보복 공방이 갈 데까지 가고 있다. 10년 전, 당시 전직 대통령의 주변을 샅샅이 뒤져가며 권력을 만끽하던 전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반대의 입장에서 뒤짐을 당하자 직접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면충돌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분노’를 언급했다. 자신을 향해 옥죄오는 검찰수사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발끈한 데 대한 반응이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모욕” “정치금도를 벗어난 일”이라고 격노했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의 입에서 ‘노무현’이 거론되자 인내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결국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대치전선의 선봉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이 잘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스 비자금이나 국정원 특활비 수수 등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내용도 그렇고, 거기에다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 역시 전직 대통령 답지 못한 처신이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전직 대통령의 발언일 뿐이다. 국민들의 반응도 신통찮았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분노가 공적인 영역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이라고 보는 문 대통령이고 보면 이번 ‘분노’는 ‘공분(公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다. “청와대가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지만, 문 대통령 본인도 과거 “참여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 권력을 동원한 가장 가혹한 보복을 당해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분노한 문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는 신중했어야 했다. 만류하지 못한 참모들도 문제다. 대통령이 분노하려면 힘빠진 전직 대통령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제천 화재참사나 가상화폐에 투자했던 금융감독원 직원이 정부 규제를 미리 알고 팔아치워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린 일 등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분노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이 정치 보복 논쟁을 지켜볼 정도로 한가한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문 대통령에게 있어 ‘노무현’은 가슴 아픈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지갑에 넣어다닌다고 할 정도로 애절하다. ‘노무현’을 거론한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분노’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은 문 대통령의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앞으로도 ‘노무현’ 얘기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결국 노무현을 ‘좌파의 대통령’으로 묶어 놓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 보복’ 논란도 그렇다. 청와대나 여권은 “드러나는 범죄 행위를 수사하는 게 정치 보복이냐. 범죄 행위를 덮어두라는 말이냐”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일부러 전 대통령들의 비리를 막 뒤져서 나오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일수록 검찰이 조용하게 수사를 해서 사법적으로 처리할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대통령의 부인이 국정원 특활비로 명품백을 샀네 어쨌네 하는 식의 주장으로 진흙탕을 만들 일은 더구나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출마를 앞두고 발간한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서 정치보복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 정치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권교체 후 새로운 정부가 전임 정부에 대해 보복하는 악습을 깨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에서 여유 있게 이겼는데도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가혹한 보복행위를 계속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전 정권과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복수를 원한다면 전 정권의 치졸한 모습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뜻처럼 상생과 통합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음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본부장·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