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매일 아침 첫 일과는 산에 가는 일입니다.

거창한 등산 수준은 아니고 좀 과한 산책이나 운동으로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앞산의 중턱 즈음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와 폭포가 있는 곳으로 하루 일상을 시작하기에는 딱 좋을 만큼의 거리에 있는 곳이라 십수 년간 별일 없으면 오르내리며 감사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계절의 오감을 남들보다 일찍 느끼기도 하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알아차리며 희로애락 비슷한 감정도 함께합니다.

그 일상에서 빼먹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몇몇 대상에게 아침인사를 하는 일입니다. 먼저 어렴풋이 깨어나는 산께 아침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 넓은 품으로 나를 받아주시는 것에 감사하는 인사입니다.

그리고 30여 분 걸어서 마을을 벗어나면 1200년 이라는,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세월을 보내고 계신 느티나무에게 허리 숙여 합장 인사를 올립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한자리에서도 어쩌면 저렇게도 당당하고 품위가 있을 수 있는지 감히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인 것입니다.

나도 늙어서 저렇게 품위 있고 당당하고 우아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무를 닮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 내색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주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어르신 나무께 인사 올린 후 본격적인 산으로 접어듭니다.

30여 분 올라가면 ‘작은 석문’을 지나는데, 그 이름은 내가 지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좁은 길 양쪽에 바위가 있고 그 가운데로 길이 나 있어서인데 그 석문을 지나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양쪽으로 작은 산 능선이 겹치며 그동안의 세상은 그 능선에 가려지고 온전히 산만 존재하는 듯합니다. 그와 동시에 세속의 소리 또한 차단되어서 동네 이장들의 아침 방송이나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 등이 그 석문을 지나면 더는 들리지 않아 세속의 풍경과 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신비한 곳입니다.

그곳을 지나며 또 한 번 허리를 숙이고 손을 모읍니다. 저에게 길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완벽하게 산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길을 올라가며 오래오래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제법 큰 평원이 나타나며 그 입구에 장승 4구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세운 장승인지 모양은 구부정, 삐뚤하지만 정다운 이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장승들에게 산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립니다.

그들과의 인사 후 조금 더 올라가면 예전에는 절벽이었을,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친절하게 철망에 나무 계단에 기타 인공 시설물이 설치된 길을 지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에 너무 친절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자연에 너무 많이 설치물을 만들어서 불편한 마음인데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 인공 나무다리와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면 드디어 폭포가 나타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너무 가물어서 폭포는 아주 야위었고 요즘은 겨울이라 하얗고 투명한 얼음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얼어 있는 와중에도 미처 얼지 못한 물이 얼음 안에서도 물소리를 만들어내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 폭포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입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몸을 풀며 한동안 시간을 보냅니다. 폭포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가끔은 물방울처럼 동그란 무지개를 보며 감탄도 합니다. 늙은 나무의 썩은 가지에서 뭐라도 얻어낼 것이 있는지 소리를 쉼 없이 내고 있는 딱따구리의 소리를 찾아 머리를 한껏 들고 새를 찾기도 하고 그러다 발견한 달처럼 둥실 떠 있는 말 벌집을 발견합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절대 만날 수 없다가 잎이 다 떨어진 나목일 때만 보이는 풍경입니다.

가끔은 나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멧돼지가 숲을 빠져나와 폭포 아래 웅덩이에서 슬그머니 물맛을 보는 풍경도 만나고 아주 가끔 일찍 올라온 사람과도 인사를 나눕니다.

그 모든 것을 하고 내려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가벼워져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줍니다. 본인에게 하는 칭찬은 남의 칭찬을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고 그것은 나 자신에게 만족하다는 다른 말이기에 때로는 마음으로 때로는 소리 내어 얘기합니다. 지난날 자신에게 너무 인색했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이제는 아낌없이 나 자신에게 베푸는 찬사인 것입니다. 고마운 일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이 준 선물인 것입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