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면서 정말 좋아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정해져 있는 것뿐이다. 만약에 정해져 있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 외모를, 성격을 그리고 재능을 절대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두지 않았을 거다. 그뿐만일까. 나는 당연히 여자일 리 없고, 이 나라에서 살지도 않았을 것 같다.
인생은 좋아할 대상을 골라 좋아하며 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모순적이고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 불공평함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걸 보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인생의 길이 갈리는 것 같다. 나쁜 것, 싫어하는 것의 존재가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게 하는 직관을 줬다면, 좋아하는 것의 존재는 그것으로 인해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했다. 또한, 인간의 선호판단은 사회적 이해를 형성할 수 있게도 했다. 선호는 사회적인 욕망, 즉 세상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달했고 이러한 욕망은 식욕만큼이나 근본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좋아하는 감정은 싫어하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인간 생존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폴(Paul)은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10개월 아기에게 등장인물 셋이 나오는 인형극을 보여주었다. 가운데 인형이 오른쪽에 있는 인형에게 공을 굴렸더니 오른쪽 인형은 가운데 인형에게 곧바로 공을 되돌려 주었다. 이번에는 가운데 인형이 왼쪽에 있는 인형에게 공을 굴렸다. 그런데 왼쪽 인형은 그 공을 가지고 잽싸게 도망가 버린다.
인형극이 끝난 다음 오른쪽에 있던 인형과 왼쪽에 있던 인형을 무대에서 내려 아기 앞에 놓았다. 그러자 아기는 몸을 기울여 왼쪽 인형을 퉁퉁 치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곤 오른쪽 인형에게 볼과 입술을 갖다 댄다. 아기는 나름대로 왼쪽 인형을 ‘나쁜 인형’으로 오른쪽 인형을 ‘좋은 인형’으로 정한 것이다.
인형극을 보게 된 다른 아기들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아기들은 좋고 싫음을 단순한 느낌으로가 아니라 상황 판단을 통해 선택한 것이다. 연구는 인형극 실험을 통해 10개월 아기만이 아닌 6개월 아기에게도 선호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심지어는 3개월 된 아기를 대상으로도 실험을 했다. 3개월 아기는 호불호의 의사를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오래 쳐다보거나 시선을 피하는 방법으로 표시한다. 태어난 지 겨우 3개월 남짓 된 아기도 착한 행동이라 판단되는 쪽을 분명히 좋아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도 이런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것은 아기도 다른 개체의 사회성을 평가하고 호불호를 구분한다는 뜻이다. 그보다 성인이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구분할 줄 알았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인간에게 좋고 싫음의 판단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보통의 기능이 아니라 날 때부터 있어야 하는 중요하고도 뛰어난 능력인 것이다.
어떤 것을 선호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와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옳고 그름을 판단했고 신뢰를 얻었으며 살아갈 이유도 찾는다. 좋아하는 감정이 우리 삶에 부여해준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덕분에 꽤 힘든 삶을 여태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함은 무릇 소중함이며 존중받아 마땅하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소중한 능력도 진화했다. 다른 사람의 선호를 인정하는 것은 나의 선호를 존중받는 일과 같다. 더구나 그것이 그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 예컨대 성별 외모 나이 출신 등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 본연의 특성들이, 혹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선호를 누군가가 함부로 짓밟거나 혐오한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혐오의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다니는 시절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고, 단지 성소수자라서,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혐오한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과 서로를 살게 하는 힘을 고스란히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무술년 새해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선호를 존중받는 환대의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든 아무런 편견 없이 반겨주고 한결같이 좋아해 주는 시골집 누렁이처럼 말이다.
인지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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