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 “통일을 꼭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하는 서구인들의 관점에서는 꼭 통일을 해야 한다는 한국민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유럽인들은 근대에 와서 이념이 다르면 미련 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 통례가 되어있다. 그 예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섰다. 홀랜드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나누어졌다. 종교와 이념 차이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운동도 일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태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대한민국의 상공을 어른거리는 현시점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하나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민에게 통일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대다수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한 핏줄을 뜻한다는 대답이 많을 것 같다.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는 요소는 땅, 핏줄, 공통적 역사적 경험, 이념을 포함하는 공통의 문화이다. 이러한 요소 중 공통의 핏줄이라는 것은 민족을 형성하는 요소 중 가장 미약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게르만족이라는 한 핏줄을 공유하고 있지만 현재 다른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의 경우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이후 독일민족 프랑스민족 영국민족이 형성된 것이다. 각각의 민족이 형성된 요인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공통의 문화였다. 중국의 경우 오늘의 중국민족을 만든 것은 핏줄이 아니라 중원이라는 땅과 유교문화라는 문화적 공통성이었다. 이런 점에서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기 때문에 무조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통일을 해야 할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다.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력이 결합한다면 우리는 더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에 꼭 통일을 해야만 경제적 효용을 얻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통일비용을 감안한다면 남북한이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로운 교류를 한다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통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통일의 필요성은 문화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라통일 이후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미약한 존재로 웅크리고 살아왔다. 분단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한 한민족의 통일은 새로운 민족문화의 형성을 가져올 것이고 통일 한국이 대륙으로 진출하여 얼음 속에 파묻힌 아시아 북방민족의 문화를 발굴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의 한 단계 상승한 민족이 참신한 철학 문학 예술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이 가능할 것인가. 역사학자이며 독립투사였던 김준엽은 자신은 무신론자이지만 역사의 신(神)을 믿는다고 만년에 피력하였다. 독일 통일의 과정을 보면 역사의 신의 옷자락을 느낀다. 역사의 순리가 역사의 신이 아닐까.
통일의 필수조건은 남북한 어느 한쪽이 자신의 이념을 포기하는 데 있다. 이념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통일된 예는 전혀 없다. 베트남, 예멘, 독일의 통일이 그러하다. 베트남의 경우 통일 전쟁을 통하여 남부 월남을 흡수하였고 예멘은 민주주의 북예멘과 공산주의 남예멘이 억지로 연합 형식의 통일을 했으나 곧 내전이 일어나 민주주의 북예멘이 승리하여 통일을 하였다. 북예멘의 승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장벽이 붕괴하는 돌발사태가 일어나고 동독 인민의 자발적 의사에 의하여 민주주의 서독으로 흡수된 것이다.
이념적 차이를 그대로 두고 연방제로 통일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고매한 이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만일 연방제로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멘의 예에서 보듯이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통일 전 서독의 동방정책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서독은 처음에는 통일을 바라지 않았고 서방 진영의 신뢰를 얻는 데 주력하였다. 그 신뢰가 지원군이 되어 소련이 동독을 포기하게 만들고 통일로 나아간 것이다. 통일에 대한 집착과 작위(作爲)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북한 인민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