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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폐목강심(閉目降心)의 세월

성완종 리스트 무죄 확정, 홍준표 대표 날개 달아

인고의 시간 보냈다지만 당 혁신 실천에는 의문…이젠 귀 열고 눈을 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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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날개를 달았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다. 사당화 논란에도 ‘홍준표당’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미 바른정당 복당파 등 친홍 세력이 주요 포스트를 장악한 마당이다. 내년 1월 조직 정비 마무리를 앞두고 이런 움직임은 더욱 거침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죄 확정 다음 날 홍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 여당을 비판하며 “국민이 알아줄 때까지 외치고 외치겠다”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검찰을 향해서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한 검사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할 만한 말이다. 홍 대표의 말마따나 ‘성완종 리스트’는 2년 8개월이나 자신을 옭아맨 ‘올무’였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그는 그 고통의 시기를 ‘폐목강심(閉目降心)의 세월’이라고 했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 인고의 시간이었다는 뜻이겠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억울함으로 끓어오르는 화기(火氣)를 다스리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옛 선현이 우환을 얻었을 때 방문을 닫아걸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던 마음공부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홍 대표가 지난 2년8개월 동안 ‘폐목강심의 세월’을 보냈는지는 일단 차치하자. 하지만 억울함을 달래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비유임은 분명하다. 되돌아보면 홍 대표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이런 고사성어식 비유로 자신의 심경을 자주 표현했다. 지난 3월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는 ‘대란대치(大亂大治)’란 말을 인용했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가 두려워 결정을 미루고, 여론이 무서워 할 일도 못하는 유약한 리더십으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며 큰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선 패배 뒤 지난 7월 당 대표에 복귀하면서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를 밝혔다.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끊겠다’는 의지로 당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정부·여당을 강력 견제하겠다는 의미였다. 대선 패배로 칩거의 세월을 보낸 뒤 화려하게 돌아오면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당을 재건하겠다는 뜻을 ‘육참골단’이란 네 글자에 담은 것이다. 그 방향은 인적 혁신, 조직 혁신, 정책 혁신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렇게 구성된 당 혁신위원회는 최근까지 8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홍 대표가 내걸었던 각오의 결과를 되짚어보자. 자신의 살을 내어주겠다던 ‘육참’은 어떻게 됐나. 그 핵심은 친박 청산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없지 않다. 최근 당무 감사 결과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 등 현역 의원 4명을 포함, 62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한 것은 그 일부다. 하지만 청산대상 1순위로 지목돼 온 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윤상현·김진태 등 ‘진박’ 의원 상당수가 교체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정쩡한 봉합이다. 홍 대표가 ‘바퀴벌레’라는 말까지 해가며 벌여온 친박 청산 치고는 지리멸렬하다. 그렇게 물리친 친박 자리에 친홍이 들어서며 또 다른 사당화 논란만 불거지고 있다.

큰 정치를 하겠다던 대치(大治)는 또 어떤가. 적폐와 신적폐 공방 속에 툭하면 국회 보이콧에다 국감 보이콧으로 맞섰다. 게다가 홍 대표는 두 차례나 청와대의 여야 영수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적폐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적폐세력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 놓고 지난 10월 방미 기간엔 문 대통령에게 단독 안보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자기 입맛대로 필요할 때만 만나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배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가 강조한 대치보다는 속 좁은 협치(狹治)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짐작건대 홍 대표의 배포는 더욱 과감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동시에 실시하겠다던 공약을 내던졌다. 이게 “여론이 무서워 할 일도 못 하는 유약한 리더십으로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던 대치(大治)의 실체인 셈이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여론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는 홍준표식 ‘큰 정치’다. 다만 “국민이 알아줄 때까지 외치고 외치겠다”는 그의 간절함이 먹혀 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본디 ‘폐목강심’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그 안에 똬리를 튼 큰 욕망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게 선현의 가르침이다. 지난 2년8개월 중 적어도 대선 후보 시절 이후 홍 대표의 언행은 이런 가르침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불행히도 최근 당무감사 결과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류여해 최고위원이 홍 대표에게 제대로 한 수를 가르쳐줬다. “귀를 열고 눈을 떠서 주변을 살피시라.” 홍 대표가 즐기는 사자성어식으로 하자면 ‘개이개목(開耳開目)’쯤 되겠는데, 지금 딱 새겨 들어야 할 경구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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