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에게 연말은 두 가지 이유로 더 춥게 느껴진다. 하나는 수은주가 뚝 떨어진 새벽 출근길 탓이고, 또 하나는 칼바람보다 매서운 인사 한파 탓이다. 올해 연말도 어김없이 대기업 임원 인사가 줄을 잇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계절이다.
여느 해처럼 올해 대기업 임원 인사의 화두(話頭) 역시 ‘세대교체’와 ‘성과주의’로 요약된다. 어느 대기업에서는 ‘사장 60세, 임원 55세’라는 명예퇴직 커트라인을 정했다는 말도 오가고, 담당 부서의 영업이익 신장률이 전년 대비 10% 미만이면 보따리 사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사의 기준이 계량화된 지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공정성을 보장하지만 때론 지나치게 냉혹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세대교체’와 ‘성과주의’라는 인사 원칙은 특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나이든 임원이 물러나고 젊은 임원으로 대체하니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실적이 좋은 임원에게 승진이라는 대가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니 ‘성과주의’도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기업은 두 가지 원칙의 인사 기준을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물갈이하면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장해 간다.
하지만 ‘세대교체’와 ‘성과주의’는 함정이 있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생물학적 연령이 인사의 잣대가 된다는 점이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옛말처럼 젊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나이로만 인간의 능력을 재단하면 축적된 경험이나 지식은 잃어버린다. 더욱이 제왕적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젊은 총수의 나이에 맞춘 ‘연령코드’ 인사에 매몰된 점은 걱정스럽다.
실례로 경영 승계를 앞둔 대기업 중 한 곳은 사장단 인사에서 60세 이상을 모두 내보냈고, 또 다른 대기업은 마치 경쟁하듯이 더 젊은 사장들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요즘 대기업 임원들에게는 ‘나이가 원수’다.
그런데 ‘세대교체’를 한다면서 등용한 신임 사장들의 평균 나이가 58세라는 점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어감으로 50대와 60대가 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이 기준으로 따지면 신임 사장들의 임기는 2년 안팎 남은 셈이다. 회사의 미래계획을 짜기는커녕 업무 파악하기도 빠듯하다. 사장이 되는 순간부터 회사경영보다는 퇴임준비를 더 서둘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과주의’는 더 큰 함정이 있다. 기업 경영의 원칙이 이윤 추구이니 ‘성과주의’가 인사의 중요한 잣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돈을 벌어 주주와 투자자에게 많은 배당금을 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의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훌륭한 성과를 올린 경영인에게 상응하는 보수와 승진이라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경제구조의 틀에서 보면 대기업의 지나친 ‘성과주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약탈 경제구조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직적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경제구조에서 대기업의 과도한 ‘성과주의’는 약자인 중소기업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실제로 대기업이 하청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도 이런 연유다. 물론 대기업의 ‘성과주의’가 창조적이고 모험가적인 경영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국가경제 전체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바람직하다.
하지만 법과 제도를 초월한 ‘성과주의’는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더욱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사의 원칙에서 ‘성과주의’는 중요한 기준이어야 하지만 얼마나 도덕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성과인지 반드시 따져야 한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하청업체와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얻어낸 성과라면 주머니를 옮긴 이윤에 불과하다. 원가절감을 내세워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가격을 부풀려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서 얻어낸 결과는 진정한 ‘성과주의’가 아니다. 그렇게 얻어낸 성과는 전체 경제를 멍들게 할 뿐이다. 경제 전체가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게 되면 ‘성과파티’도 한낱 일장춘몽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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